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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겨울방학특집) 그래도 융(2) [그의 MBTI 유형은 아마도]

등록일 2022-01-19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3179

 

 

47.

 

* 겨울방학 특집_그래도 융(2)
 

그의 MBTI 유형은 아마도 

 

 

 


첫 번째는 융의 저서, [ Red Book ]  융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관한 기록으로 이 책을 쓰는 16년 동안에 융은 원형, 집단무의식, ‘개성화’ 이론을 개발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금강경 만다라(Mandala), ‘만다라’라는 말 자체는 ‘원(圓 · circle)’을 뜻하는 산스트리트어(मण्डल)의 음을 따라 번역한 것이다. 융은 만다라를 완전한 자아의 정신분석학적 표현으로 보며 이를 치료에도 활용하였다. 맨 오른쪽의 이쁜 만다라는 융의 환자가 그린 만다라이다.

 

 

 

  무슨 형이냐는 질문에 예전에는 A형, O형이라고 답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INFP, ESTJ 등으로 답한단다. 전자는 혈액형, 후자는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Myers-Briggs Type Indicator)이다. MBTI 는 미국의 작가 Katharine C. Briggs와 그녀의 딸 Isabel B. Myers 의 합작품이다. 모녀가 융의 성격유형론에 기반하여 1944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MBTI 는 분명 한 획을 긋고 있는 널리 알려진 성격검사인데 유명세 만큼 논란 또한 계속 되고 있다. 융의 이론에 기반(융이 과연 이에 동의할지 또 좋아 할지는 의문임)하였다는 이 검사의 인지도와 인기로 볼 때 나의 관점에서 아이러니한 점 아니 불만이 한 가지 있다. 

 

  뭐 그것은 오랜 문화적 관습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이 유명한 검사의 이름에는 정작 개발자인 모녀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M은 딸의 성, B는 엄마의 성이다. 실컷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검사의 이름에는 자신의 진짜 이름(일상에서 불려지는 이름)은 없어지고 남편의 성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엄마를 기준으로 하면 M은 사위의 성, B는 남편의 성이다. 딸의 중간 이름(Middle Name)에 결혼 전 성 Briggs 가 들어가 있어 미혼 때의 역사를 조금은 드러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Isabel-Katharine Type Indicator(IKTI) 라고 혼자 불러 본다. 가려진 그녀들의 공을 온전히 상기하고 싶다.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Psychological Types)을 나 또한 충분히 공부해 보지 않아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심리학적 지식으로 비춰 보았을 때 MBTI 에는 많은 한계점(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극단으로 표현되는 성격 차원은 정상분포를 가정할 수 없다는 점과 상황에 따른 가변성을 고려하지 못하였다는 점 등)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대충 MBTI 를 가르치고 또 검사를 통해 나온 성격유형을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자벨과 캐서린의 방식에 따라 MBTI 를 이해하고 해석하자, 그리고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 보자고. 그럼, 천하의 융이라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MBTI 를 융에게 적용해 보자. 실제로 검사를 할 수 없으니 그냥 재미 삼아 추측해 본다. 쨘~ 융은 아마도 INTP?

 

  융의 성격을 INTP 유형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융은 내향형(I: Introversion)이다. 사교성 같은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내면을 들여야 보는 그는 I 일 것이다. 그런데 내성적인 성격의 많은 이들이 MBTI 결과에서 E(외향형, Extroversion) 를 받아 들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융의 경우에도 E 가 나올 수 있다. 왜냐하면 융에게서는 대부분의 에너지가 내부를 향하고 있지만 그 에너지의 양이 어마어마하여 즉 열정이 넘쳐서 밖으로 흘러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 초창기에는 주류가 아니었던 프로이트를 옹호하였고 나중에는 고뇌 끝에 거목이 된 프로이트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로 결심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 또 몇 년에 걸쳐 손수 돌로 집을 짓는 것 이것 웬만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물론 에너지를 꼭 E 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서 TMI 를 하나 흘린다. 융은 어린 시절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중간만 가자는 식으로 공부하고 행동하였지만 때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인정 받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공부하기도 했고 또 흥분하여 acting out(이유야 있었지만 폭력을 행사)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것들을 고려해 볼 때 융은 기질적으로는 I 이지만 E 의 모습도 가졌다고 본다.

 

  둘째, 융은 직관형(N: iNtuition)이다. 융 같은 사람이 직관적이 아니라면 누가 직관적이겠는가. 그에게 씌워진 신비주의 타이틀만 봐도 그렇다. 갑자기 나무 식탁이 쩍 갈라지고 칼이 저절로 부러지는 것을 보고 융은 보이지 않는 것과 그 세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에 의미를 부여한다. 프로이트와의 대화 도중 갑자기 책장 속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려와(뭔가 떨어졌겠지) 깜짝 놀랐고 이를 통해 그와의 결별을 예감한다. 심지어 유럽이 거대한 홍수로 인해 피바다로 변하는 환상을 보며 당시에는 자신이 정신병으로 위협받는다고 느꼈는데 그로부터 1년 후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것을 보고 집단과 자신의 연관성(일종의 예지몽으로 본 것 같음)을 인식하고 자신에 대한 성찰이 우선임을 깨닫는다. 꿈 분석 등 융이 직관형일 것이라는 추측에 대한 근거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융은 현실적이었다. 현실적인 것을 MBTI 에서는 N의 반대편에 있는 감각형(S: sensing으로 본다. 융은 자신의 가난을 알고 있었고 돈벌이를 위해 진로를 결정했다.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무렵에도 ‘이승’에 발판이 필요함을 알고 가족과 직업을 통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내면 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융이란 사람 참 현명하지 않은가. 환상을 경험한 것으로 전해지는 도발적인 철학자 니체가 광기로 생의 후반을 고통받았던 것과 비교하여 융은 자신이 현실감각 유지 비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셋째, 융은 사고형(T: Thinking)이다. 정말로 융은 엄청나게 많이, 길게, 오래 생각을 하였다. 그의 이론은 그의 생각의 산물이다? 이렇게 말하면 융이 섭섭해 할 것이다. 아마도 융의 이론은 그의 경험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런데 그 경험에 가장 많은 역할을 한 것은 분명 ‘사고’의 힘이 아닐까. 이것은 자서전의 멋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 기억, 꿈, 사상(Memories, Dreams, Reflection)! 흔히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또는 너무 생각을 많이 하고 산다고 그야말로 생각 없이 말들을 해 댄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Meta-cognition)이다. 융의 사고 내용과 과정은 독특했고 게다가 메타-인지까지 탁월했으니 융은 가히 생각하기의 왕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융은 먼저 생각했고 그 다음 체험했으며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연결시켰고 그것으로 자신의 사상을 만들었다. 정신의학자인 융은 당연히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정신분석가의 권위로서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환자를 만나고자 했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융은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문제를 보고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자신의 반응을 일종의 치료 도구로 쓰려고 하였으므로 환자를 통해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과 드는 생각들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융이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외부에 표현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렇게 깊게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려고 했음에는 틀림없다. 지금 융이 숨은 감정형(F: Feeling)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고형이지만 노력과 성찰을 통해 감정적으로 성숙해졌을 것을 추측해 볼 뿐이다.

 

  넷째, 융은 인식형(P: Perceiving) 이다. 계획을 잘 하지 않고 즉흥적이고 매 순간에 산다는 인식형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부사(副詞)는 ‘느닷없이, 뜬금없이, 밑도 끝도 없이…’이다. 평소 생각이 많은 융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을 지 모르겠지만(MPTI 에서는 이와 같은 특징을 판단형 J: Judging 으로 봄) 그것을 잘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앞에 나열한 부사들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을 듯. 프로이트와의 결별 후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융은 새로운 태도로 환자를 대해야 겠다고 결심하고 환자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기다리며 ‘우연’에 맡겨 보기로 한다. 자서전을 쓰기 위한 구술 작업에서도 융은 즉흥적으로 말했다고 하는데 그는 그 모든 이야기가 순식간에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과 MBTI는 동일어가 아니다. MBTI 를 통해 사람들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하면 융은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그의 이론인 분석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개성화/개별화(Individuation)’인데 고유한 ‘자기(Self)’를 남과의 유사점을 통해 동일한 유형으로 나누는(묶는) MBTI 의 논리는 지나친 단순화가 아닐까. 융 그리고 분석심리학에 대한 나의 공부와 이해가 부족하지만 적어도 융이 말하는 심리학적 유형(Type)은 16가지의 MBTI 유형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 같다.

 

  모든 관점이 상대적이고 사람(성격)의 유형 또한 참으로 다양한 것이라면 이러한 다양성을 보상할 수 있는 단일성의 개념은 무엇일까 하고 융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실마리로 융은 중국의 ‘도(道)’ 개념에 이르렀다고 한다(전생에 융은 동양인이었을까). 융 참 대단하다. 끊임없는 의문과 그에 따른 생각과 성찰. 그의 자유롭지만 깊이 있는 사고의 과정을 범인인 나로서는 따라가기 쉽지 않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그가 더 궁금해 진다. 재미 삼아 그의 MBTI 유형을 추측하여 그의 성격을 가늠해 보았지만 이것은 그의 일부분에 대한 나의 해석일 뿐이다. 융은 INTP 이면서 ESFJ 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ISFJ, 또 다른 때는 ENTP 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융은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라고 본다. 융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