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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겨울방학특집) 그래도 융(1) [카알 융과 심리학자의 돌]

등록일 2022-01-10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3377

46.

 

* 겨울방학 특집_그래도 융(1)


카알 융과 심리학자의 돌(Carl Custav Jung And The Psychologist’s Stone)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정도는 아니지만 흥미진진한 내적 판타지 여행 ]

 

 

안내,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공지사항 겨울방학특집_그래도 융_소개]을 읽기 바랍니다.

           

 


영국, 미국, 한국, 일본 순서의 출판본이다. 제목을 자세하게 보라. 누구의 돌로 표현되었는지.

 

 

  영국의 작가 조엔 롤랑의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원제는 이다. 번역하면 ‘해리 포터와 철학자의 돌’이다. 어째 이상하다. 번역을 잘못 한 건가. 아마 한국에서는 이라고 번역한 미국식 제목을 또 번역해서 ‘마법사’가 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역시 영국과 미국에도 문화 차이가 있는 듯하다. 일본에서는 <해리 포터와 현자의 돌>로 번역한 것으로 보면 이 유명한 ‘돌’의 소유권 논란(누구의 돌인가?)은 소설/영화(엄밀히 말해 소유권 쟁탈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복잡하다.
  


  지금 ‘철학자≒마법사≒현자’ 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잠깐 따져 보자면 유럽의 역사성으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돌’과 매치되는 직업은 오히려 ‘연금술사(Alchemist)’가 아닐까 싶다. 영원 불멸의 상징인 금(Gold)에 대한 허황된 열망은 연금술사들로 하여금 마치 도를 닦듯 깊은 고민과 수 없는 시행-착오를 이끌었고 덕분에 의도치 않은 화학(Chemistry)의 발전을 가져 왔다. 아마 중세의 많은 연금술사들은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역시 뭐라도 계속 하면 뭐라도 되기는 하나 보다. 이렇게 하여 연금술사는 마법사이자 철학자이자 현자가 되었다.

 

  해리 포터 영화에 나오는 피를 상징하는 그 ‘붉은 돌’도 마법사이자 연금술사인 플라멜이 만든 것이다. 그 돌은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불로장생(플라멜도 이 약으로 6세기 이상을 살았음)의 약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악의 화신 볼드모트가 악착같이 그 돌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돌(stone)에 관한 것이다. 융에게도 돌은 여러모로 중요한 상징이었고 그가 정신과 의사로 출발했지만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아 제목을 패러디 해 보았다. 게다가 융 또한 연금술에 심취(저서로 ‘심리학과 연금술’ 이 있음)하였었으니. 그리하여 제목은 <카알 융과 심리학자의 돌>.

 

 

돌 위에 앉아서


  7~9세 무렵 어린 융은 혼자 있을 때 종종 집 근처 담 앞에 솟은 돌(일명 ‘나의 돌’) 위에 앉아 온갖 생각의 유희를 펼쳤다. 여기서 그는 장자의 호접몽과도 같은 체험을 한 것 같다. 가히 조숙하다 못해 과숙(?)하다고 해야 할까. 그 내용은 이렇다.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나’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 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이해 되었는가. 실제로 융은 중국의 도가 사상에도 심취했었다.

 

 

벽돌집 짓기 놀이의 추억


  10~11살 무렵 융은 벽돌로 집 짓는 놀이에 열중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이 놀이를 다시 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프로이트와의 결별이다. 연인 사이도 아닌 두 거장이 학문적 이견으로 갈라선 것을 굳이 결별이라고 해야 하나 항상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후 융의 상태를 보니 결별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모자란듯 싶다. 왜냐하면 융은 프로이트와 갈라선 후에 ‘방향 상실’ 상태에 놓일 정도로 마음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이 혼란한 시기에 융은 우연히 어린 시절의 벽돌집 짓기 놀이를 떠올렸고 어린 시절의 융과 성인 융을 이어지게 하기 위해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 번 더 살아 보기로 하였다. 참 이유도 가지가지다.

 

 

녹색금으로 된 그리스도 상


  융이 <심리학과 연금술> 저술을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어느 밤 침실에 놓여 있던 그리스도의 상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이 녹색금(청금석)이었다. 실제 그런 것이 아니라 융의 눈에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연상(association)의 대가인 융 답게 융은 이 녹색금(연금술사들이 인간뿐 아니라 무기물에도 존재한다고 여긴 생동하는 본성이라고 함)에서 시작하여 인간, 세계, 생명, 혼, 대우주에 이르고 결국 인간 예수에 대한 의문에까지 닿는다. 그리고 예수가 살던 시절에 예수가 ‘스타’(이 표현에 오해 없기를)가 된 것은 예수의 존재가 당시 사람들 스스로는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절실했던 시대정신(박애, 사랑, 용서 등)에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좀처럼 이해가 쉽지 않은 융의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은 요즘 말로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호숫가에 돌로 집을 지어서


  융(국적이 스위스)은 취리히 호숫가의 진귀한 풍경에 마음을 뺏겼고 그 근처에 몇 년에 걸쳐 돌로 집을 지었다. 전기도 수도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융은 손수 화덕에 불을 지피고 직접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요리해야 했다. 단순한 일을 하면서 단순해지는 것이 융에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깊은 생각이나 자신에 대한 인식을 ‘돌에 표현거나 돌로써 고백’해야 했다는 그에게는 돌집이 필요했지만 지나친 내면 탐색의 반대급부로 겪게 되는 피로감과 혼란감을 가사 노동으로 해소하는 것 또한 필요했으리라. 볼링겐에 지은 융의 집(아래 사진에서 확인해 보라)은 신비스럽다. 그런데 한 번은 가 보고 싶지만 거기에 살고 싶지는 않다. 융에 의하면, 그 곳은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이란다. 허걱.

 

 

 

심난할 땐 돌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출발점으로 또는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활동이나 물건 또는 이미지가 있는가. 융에게는 이것이 바로 ‘돌을 다루는 것’이었다. 벽돌로 집 짓는 놀이 같이 돌을 다루는 일은 그의 인생에서 되풀이 되었다. 놀이 같은 것은 더 이상 할 것 같지 않은 인생의 후반기에도 말이다. 정신분석가였던 아내 엠마(나는 융이 마누라 복은 역대급이었다고 생각함) 사망 후에도 계속되었다. 뭔가 실마리를 풀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았다고 한다. 돌을 다루면서 만지면서 융은 아마도 마음의 안정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융의 돌과 같은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거나 물건이거나 아님 놀이 심지어 어떤 종류의 감각, 상상일 수도 있다. 항상 되돌아 가게 되는 집과 같은 그 무엇, 마음의 안식을 주고 지친 내가 또 다시 시작할 있게 만들어 주는 그것, 질리지 않고, 옆에 없지만 항상 마음 속에 함께 하는 그 것 말이다. 그럼, 우리도 각자 ‘(이름)과 (직업 또는 정체감)의 (  ?  )’ 에서 빈 칸을 채워 보자. 도움 주기 위한 예시: 김근향과 수퍼바이저의 빨간 펜, 김근향과 심리학자의 꽃, 김근향과 기획자의 글…  모처럼 융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