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참을 수 없는 해석의 명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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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해석의 명확성 [ 모호함의 미학 ]
알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강해지고 점차 알 ‘권리’도 보장 되어가고 이것저것 알려주는 다양한 미디어 또한 엄청난 수로 등장하고 있다. 아는 즐거움도 있고 재미도 있으며 때로 새로운 앎은 삶까지 변화시켜 업그레이드된 인생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일 우리가 모두 똑같이 알게 되면 어떨까. 어떤 현상을 똑같이 해석하게 된다면? 100%로 그렇게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해질 수는 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맞을 수 있는 것도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대중매체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전달되는 지식 중에서는 매우 전문적인 수준의 것도 많다. 그 만큼 교양과 상식을 함양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이 커졌다 하겠다. 분명 알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런데 앎과 삶은 좀 다른 문제이다. 항상 이론과 실제는 갭이 있지 않는가. 게다가 동일한 현상도 설명(explain)하기 나름이다. 설명이 다르면 해법(solution)도 달라진다. 만일 결과가 같다면 어떤 설명, 해법도 OK다. 그런데 나의 상태와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는 다양한 보기들이 있을 것이고 그 중에 상대적으로 더 적합한 것, 맞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설명에 앞서 우리는 현상을 제대로 기술(describe)해야 한다. 결국 현상을 잘 이해하려면 잘 기술하고 잘 설명해야 하는데 이것을 ‘해석(interpretation)’이라고 말하면 적당할 것 같다. 즉 기술+설명=해석. 분명하게 해석하려면 현상이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성만 더해 가는 느낌이라 해석이 쉽지 않다. 명확하고 통제가 가능하여 예측할 수 있으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니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이러니 해석은 더 어렵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타인의 안경을 통해서 볼 수만도 없다. 비록 제 눈에 안경이라도 제 눈에 맞는 안경을 끼는 것이 좋다.
자신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해결하기에 앞서 그 상황에 대해 먼저 해석을 적절하게 내려야 한다. 이 해석은 결국 자신이 내려야 한다. 어차피 내 인생이고 어차피 해결도 내가 해야 하니까. 타인의 해석은 참고만 하면 된다. 상황이 모호할 때 나의 해석은 더 풍부해지리라. 나의 해석에 따라 가능한 솔루션을 찾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명확하게 해석해서 명학하게 제시하는 솔루션이 당장은 속 시원해 보여도(이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지만) 그 솔루션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자신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되려면 변형이 필요하다.
요즘 대중매체에서 속 시원하게 제시되는 각종 솔루션들(제시된 문제가 무엇이든)을 그냥 받아들이기 전에 잠깐 멈춰 서자. 솔루션을 적용하에 앞서 자신만의 해석을 해 보자. 모호한 나의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질지라도 나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눈을 크게 뜨고 때로 가늘게 뜨고 현실을 바라보자. 마음껏 투사(projection)해 보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수준에서. 투사를 잘못하면 남만 탓하는 못난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모호함이 주는 은근한 미학을 좀 즐겨보자. 그러고보니 오늘은 글이 전체적으로 모호하다. 자,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력 테스트에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