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밥 배 따로 디저트 배 따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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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배 따로 디저트 배 따로, 가능하다.
[ 감각-특정적 포만(Sensory-specificity satiety) ]
우리말 먹방이 ‘Mukbang’으로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공식 등재 되었단다. 대박! ‘Daebak’도 함께 등재되었다. 여러모로 뿌듯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대식(많이 먹기)하기로 유명하는데(일본인은 소식) 먹는 것에 우리가 좀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엄청난 가지 수를 자랑하는 대형 뷔페 식당들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3접시 정도면 대충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뷔페 플로어를 서성거리며 안 먹은 음식을 기어코 찾아내서 본전을 뽑으려고 했었지. 답답한 코시국에 행복했던 뷔페의 추억을 잠깐 회상해 본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먹을 수 있는 걸까.
공기밥을 먹을 때마다 함께 먹는 남자에게 밥을 두어 숟가락 덜어주는 여자가 있다. 남자가 거부하면 밥 두어 숟가락은 남긴다. 요즘 같은 탄수화물 기피 아니 거의 혐오 시대인 때에는 남자들 또한 밥을 적게 먹는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여자는 다 계획이 있다. 덜어낸 두어 숟가락 밥의 자리를 채워줄 디저트를 이미 정해 놓았던 것이다. 남자는 밥을 먹은 뒤, 각종 과일과 생크림이 수북하게 올라간 와플( 조각케이크 등등) 하나를 다 해치우는 그녀가 참 위대(?)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미 밥을 많이 먹어 배 부른 남자 역시 와플에 포크를 꽂고 있으니 그 또한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다.
밥을 덜어내거나 적게 먹은 때가 아니어도 가령 너무 맛난 고기를 누가 사준다 하여 소위 배터지게 먹은 뒤에도 항상 디저트 배는 남아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분명 배가 불러서 더 들어갈 데가 없는데. 이 상태에서 고기는 더 먹지 못한다. 그런데 케이크나 과일 등의 디저트는 먹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종목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일 종목인 고기는 더 먹을 수 없지만 종목이 다른 음식들은 먹을 수 있다. 혹시 고기도 종류가 달라지면 가능할 수도? 돼지고기 먹다가 소고기로의 체인지는 언제든 환영이지만 소고기 먹고 배가 부른 때에도 돼지고기는 또 먹을 수 있으리라. 아마 생선회도 가능할 듯.
이렇게 한 가지 종류의 음식을 계속 먹을 때 그 맛에 물리는 것(싫증나서 더 이상 못 먹게 됨)을 ‘감각-특정적 포만(Sensory-specific satiety)’이라고 부른다. 이 때의 배부름은 음식의 양이 아니라 맛(감각)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감각(맛)이 다른 종류로 바뀌면 더 먹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말초적 특징(분명 중추신경인 뇌에서는 더 먹지 말라고 하지만)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다양한 음식들을 접하게 될 때는 물론 동일한 재료라도 다양하게 조리해서 다른 맛을 내게 되면 우리는 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 라면을 2개 끓여서 먹기는 어렵지만(물론 쉬운 사람도 있음) 하나는 그냥 끓이고 1/2개는 면만 살짝 기름에 바짝 튀겨서 그리고 또 1/2개는 라볶이로 만든다면 우리는 라면 2개를 거뜬히 먹을 수 있다. 우리라고 표현해서 미안하다.
결론, 밥 배 따로 디저트 배 따로? 이것 가능하다. 디저트로 밥을 먹는 것만 아니라면. 한 가지 조심할 것은 다양하게 조금씩 먹는다는 것이 의외로 과식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조심하시길…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감각-특정적 포만’이라는 어려운 네이밍은 ‘같은 맛에 대한 물림 또는 싫증 현상’이라고 하면 더 잘 이해될 듯하다. 끝으로 최근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우리말 중에 음식과 관련된 말로는 반찬, 불고기, 치맥, 동치미, 갈비, 잡채, 김밥 등이 있음을 알린다. 쓰기만 해도 군침이 꼴깍! 그 맛을 이제 외국인들도 알게 되는군.
출처: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