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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명불허전의 좋은 예 [어빈 얄롬]

등록일 2021-10-25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2970

 

 

 

35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좋은 예

 

 

[ 어빈 얄롬 ]

 

 

 

  한국임상심리학회의 2021년 가을학술대회가 끝이 났다. 나의 학술부회장 임기도 끝났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도 가을이 왔다. 그간 날씨도 여름에서 또 여름-겨울로 가더니 이제 제 정신을 차려 가을을 되찾아 가는 듯. 이번 학술대회의 백미는 단연 해외 석학 세션이었다. 코로나 시국이 계속 되다 보니 이제 온라인 학술행사 쯤은 익숙해졌고 오히려 편안함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이 틈을 타 오프라인이라면 정말 모시기 어려웠을 해외 석학 네 분을 온라인에서 편히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의 부름에 기꺼이 응해 주어 배움과 만남의 기쁨을 선사한 네 분의 석학은 다음과 같다.

 

 


*나이를 계산해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왕성한 활동에 한 번 더,  소탈함에 또 한 번 더.


-  자아(self) 연구의 대가  마크 리어리(Mark R. Leary), 1954년 생으로 만 67세


-  수용전념치료(ACT)하면 딱 떠오르는 스티븐 헤이즈(Steven. Hayes), 1948년 생으로 만 73세


-  하버드 성인발달연구의 연구책임자 조지 베일런트(Gorge - E. Vaillant), 1934년 생으로 만 87세


-  실존 심리치료와 집단치료의 거장 어빈 얄롬( Irvin D. Yalom), 1931년 생으로 만 90세

 

 

  네 분의 강연 모두 정말 좋았다. 그리고 그 분들 인상도 좋았다. 지인 중에는 살아 생전 얄롬 선생님을 보게 되었다고 감격해 마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헤이즈를 초청했다고 하니 누군가는 가수 헤이즈? 라고 했는데 가수 헤이즈였으면 호응이 더 좋았을 지도.  기획회의 때 실제로  BTS 를 거론하기도 했다. 언젠가 학술대회에 가수를 부를 일도 있겠지. 기대해 본다. 네 분의 강연을 들어본 결과, 그 분들을 강의로든 책으로든 화면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적극 추천한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가 ‘연결(Connection)’이었는데 사실 연결은 우리가 사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아니 죽은 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부분이므로 그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고 본다.

 

  네 분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어빈 얄롬 선생의 세션은 명불허전이라는 말의 뜻을 가슴 깊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명성이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 이름이 날 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는 현재 90세이다. 그런데 지금도 심리치료를 한다. 코로나 시국이라 그리고 감퇴하는 기억력을 염려해 단 회기(Single session) 상담을 줌(Zoom)을 활용하여 비대면으로 한단다. 대단하다. 당연히 대기자가 줄을 섰고 팬(?)들의 이메일도  엄청나단다. 그런데 그는 웬만하면 답장을 하려고 한다는데 그 이유는 상대방에게 자신들이 존중받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란다. 이 분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너무 흔한 이 말이 그를 통하니 새삼 신조어처럼 낯설었지만 그 의미는 확 와 닿았다.

 

  14세에 만나 평생의 좋은 반려자였던 아내(그의 표현: 그녀는 내 기억 자체)와는 작년에 사별하여 최근에는 애도,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들을 하고 또 이를 곧 책으로도 출간한단다. 어찌 슬프지 않았으랴. 어찌 두렵지 않았으랴. 하지만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대가답게 그는 지금 죽음이 두렵지 않단다. 인생에서 할 일을 다 했고 후회가 없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불안은 거의 없단다. 그리고 점점 그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단다. ‘마지막 잎새’(번역이 기가 막혔음) 같은 기분이랄까. 무신론자이지만 죽으면 아내 곁으로 간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 기분이 좋단다. 그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듣는 나는 울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처럼 나이 든 사람에게는 죽음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은 척 할 필요가 뭐가 있겠냐고 했다. 캬~아.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시’ 처럼 내 마음 속을 울렸다.

 

  심리치료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힘이 든다고 호소하고 때로 번 아웃되기도 한다. 비록 노쇠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는 또 말했다. ‘사람들을 돕는 것은 몹시 멋진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는 것 같다’고. 나에게 부과된 많은 의무와 역할들 그리고 부족한 시간에 짜증내며 효율이라는 이름 뒤에서 어떻게든 수고를 덜 하려고 애썼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리어리 교수의 조언대로 반성적 평가(reflective appraisal)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정서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베일런트 박사가 이번 대담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개인적으로 추천한 ‘ 즐거운 휴가를 즐겨라. 놀이를 즐겨라’는 말을 떠올리며 이제 나도 이 글을 마치고 지금 당장 내 맘대로 즐겁게 놀아 보려고 한다. 

 

  한 가지만 더 추가하자면,  너무나도 완벽하게 깔끔했던 민머리로 우리를 적어도 나를  깜짝 놀래 킨 헤이즈 교수가 강조한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의 마음을 가지고 내친 김에 나에게 친절까지 베풀어 보려 한다. 이래서 배워야 하는 것이로구나. 그 분들을 만나서 정말 좋았다.  네 분의 석학 그리고 이들을 우리와 ‘연결’해 주기 위해 뒤에서 애써 주신 한국임상심리학회의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기쁨 주셔서 고맙습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