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절대 설득 당하지 않아요!! [망상의 그 견고함이란]
33
절대 설득 당하지 않아요!!
[ 망상의 그 견고함이란 ]
생활의 좌우명, 인생의 모토 & 슬로건, 나만의 키워드, 가슴에 새긴 명언 등 뭐든 좋다. 한 가지(1) 만 써 보라. 해당 사항이 없다면 평소 자신이 참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명제를 하나(2) 를 써 보라. 이 또한 없다면 자신의 안 좋은 측면에 대한 강한 생각(3)을 한 문장으로 써 보라. 이것도 없다면 마지막으로 세상이나 타인(특정인도 좋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안 좋은 생각(4)을 한 문장으로 써 보라. 자 이제 자신이 쓴 문장 즉 생각(말/글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니까)의 견고성을 한 번 시험해 보자. 내 속의 두 사람이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하나씩 들어본다.
(1)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이유는 아니다.
(2)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3) 나는 예쁘거나 잘 생긴 데가 없다.
(4)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내 애인(또는 배우자)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다
먼저 (1)번이다. “A ship in a harbo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a ship is built for’’(G. M. Hopper)를 정호승 시인이 자신의 산문집에서 매끄럽게 번역한 문장이다. 뭔가 안전하고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는 내가 되돌아 봐 진다. 하지만 이러려고 사는 것은 아닐 텐데… 나의 이상은 뭘까… 등등의 생각에 잠기게 만들지 않는가.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떨 때는 배를 항구에 묶어 두어야 만 할 때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태풍이 온다든지. 그때도 내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풍랑을 헤치고 항구를 떠나 항해를 시작해야 할까…(곰곰 생각)… 이제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때로 배를 항구에 가만히 안전하게 묶어 두어야 할 때도 있다’라고 속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여튼 이 사람 항상 도전하는 발전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2)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런데 때로 포기해야 될 때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니까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지 않을까. 그것을 인정하는가? 아니다. 내 인생에 포기란 없다. 그럼 포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가. 포기해 보기는 했다. 그래서 이루지 못했던 거다. 아니다, 포기했기 때문에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포기하거나 안 하거나 상관없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많다. 그렇긴 하지…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 포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3) 나는 예쁘거나 잘 생긴 데가 없다. 정말 하나도 없는가? 정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럼 엄마에게 한 번 물어보라. 에이 부모님은 객관적이지가 않다. 믿을 수 없다. 그럼 가족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친한 사람들은 날 위로한다고 대충 좋은 말을 해 주니까 믿을 수가 없다. 그럼 불행하지만 그렇게 믿고 사는 수 밖에 없겠다. 거 봐라. 나는 역시 예쁘거나 잘 생긴 데 하난 없는 못생긴 사람이 맞다(참고: 이러한 생각은 기분이 다운되고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가는 것을 덤으로 제공한다).
(4)-1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정말? 하나도 없는가? 아니 하나는 있다. 아니다. 정말 하나도 없다. 세상은 항상 나를 버렸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믿을 수가 없다. 그럼 혹시 사람들 중에 내 말을 믿어 주는 또는 주었던 사람이 있었는가? 처음에는 나를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항상 끝이 안 좋았다. 그럼 누가 먼저 믿지 않았었나? 항상 다른 사람이 빌미를 주었다. 그리고 배신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 혹시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에 잠김)… 때에 따라서는 내가 오해를 한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믿지 않게 되었다. 사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원래 그렇다. 사람은 상호적이니까. 하지만 세상에 믿지 못할 사람도 있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주변에서 잘 찾아보자.
(4)-2 그(편의상 중성적으로 표현, 성별은 따지지 말것)에게 딴 사람이 생긴 것 같다. 혹시 오해는아닐까. 요즘 들어 연락도 잘 안 오고 맨날 피곤하다고 하면서 만나는 것도 좀 뜸해졌다. 만나지 얼마나 되었지? 2년 반이 넘었다. 그럼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맨날 둘이 좋을 수만 없지 않은가. 또 각자 하는 일도 있고 아니면 권태기일 수도 있지 않나? 아니 그럴 수 없다. 걔가 처음엔 얼마나 나를 좋아하고 잘 해 주었는데.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요즘 나는 1000일 기념 이벤트를 준비 중인데 걔는 오히려 동아리/동호회 활동에 더 열심인 것 같다. 그와 친한 친구들은 뭐라고 하던가. 전혀 그런 것에 대한 말이 없다. 틀림없이 바람 피우는 것 같다. 너무 비약 아닌가? 안 그래도 증거를 수집 중이다. 그런데 내가 꼬투리를 잡는다면서 오히려 자기가 짜증을 낸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잘 해 주고 사람들도 내가 얼마나 나이스하다고 하는데… (이 사람 생각을 바꿀 것 같지가 않다)
사람의 생각이 100% 참(true)일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이란 오늘 뭘 먹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 즉 신념(belief)에 해당된다. 우리는 신념이 강한 사람을 대단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 신념이 잘못된(false) 것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어떤 반대 증거를 제시해도 여전히 그 신념을 믿고 아니 오히려 강해지고 그래서 절대로 설득되지 않는다면 이것을 우리는 정신병리학적으로 ‘망상(delusion)’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1)과 (2) 의 경우는 신념이 될 수 있지만 (3)은 망상, 우울 망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으며 (4)-1 는 편집 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4)-2는 부정 망상(파트너가 부정을 저지른다는 생각, 이것은 흔히 말하는 의애증, 의부증, 의처증이며 공식적으로는 망상장애로 진단할 수 있음)이 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 외에 너무도 잘 아는 그 유명한 과대망상(본인 외에 모두가 괴로움)도 있다.
기억해 두자. 신념이 망상이 되려면 반대 증거에 의해서도 절대로 설득되지 않고 견고하며 그 누구(심지어 자신에게까지)에게도 도움되지 않고 해를 주는 지경에 이른 상태라는 것. 뭔가 단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또는 어떤 생각이 단단해지고 있다면 그 생각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라. 그 견고성을 시험해 보자. 이러한 메타 인지적 시도가 신념과 망상의 갈림길에서 나쁜 선택을 할 위험성을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