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덕질‘의 세계 [박지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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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의 세계
[ 박지훈이 좋다 ]
이 박지훈은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던 가수 겸 배우 박지훈이다. 1999년 5월 29일생. 생년월일을 아는 것은 덕질의 기본이다. 그의 팬클럽 이름은 메이. 봄(May), 해도 좋은(may), 아마 ~ 일지도(may) 등등의 좋은 뜻만을 지녔다. 그의 이미지와도 찰떡이다. 박지훈은 2017년 당시 거국적이었던 아이돌 챌린지 프로그램에서 ‘윙크남’, ‘내 마음의 저장’ 등등으로 인기를 모아 최종 데뷔에 성공했던 존잘/존예(정말 잘 생기고 예쁘다는 뜻의 신조어로 비속어이긴 해도 이제는 일반화된 표현임) 남자 아이돌이다. 동명이인이 많으므로 그의 공식 홈페이지(http://park-jihoon.co.kr/)를 통해 누구인지 확인해도 좋겠다.
아이돌 챌린지 당시 딸 아이는 박지훈이 아닌 다른 출연자의 팬이었고 나 또한 딸 아이의 원픽에 동원되었을 뿐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만들어낸 ‘내 마음의 저장’이라는 대단한 유행어의 기원도 사용법도 몰랐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참 많고 그에 열광하는 아이들 또한 참 많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다 최근 ‘멀리서 보면 푸른 봄’(2021)이라는 설렘 가득한 TV 드라마(웹툰 원작)에서 노랑머리에 귀여운 그러나 연기가 장난 아닌 박지훈이 눈에 딱 들어왔다. 소위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었다. 이 친구 어디서 왔지? 그런데… 이 박지훈이 그 박지훈이었던 것이다.
딸이 덕질로 사 둔, 하지만 이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가 속했던 그룹의 선물상자(제법 돈을 들여서 산 것이리라, 아니 내가 사 준 것이 분명함) 같은 것이 집에 남아있어 열어보니 다행히(?) 박지훈 카드가 들어 있었다. 과거에 몇몇 아이돌에 대한 나름의 덕력이 대단했던 딸 아이(덕분에 나는 각종 콘서트, 방송국, 팬 싸인회, 아육대 등에 데려다 준 차량 픽업 덕력이 대단했음)에게는 이제 관심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을 그 아이템을 몇 년 전 그 그룹에 관심 가지는 내 학생들에게 나눠 줬었는데 다행히 박지훈은 남아 있었다. 당시 옹성우와 몇 명의 아이템은 픽업되었던 것 같다. 지금 보니 카드 속 그의 모습 오이구(529) 귀여워라.
이성도, 남동생도, 그렇다고 아들 삼았음, 사윗감 후보도 아닌 그냥 내 청춘에 대한 설렘을 소환하는 스위치 삼아 나는 박지훈을 덕질하기 시작했다(내 청춘시절에 그런 존잘은 절대 없었음). 왜냐하면 그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친구 비주얼이 대단했는데 볼 때마다 다른 모습, 다른 느낌이 들었고 듣자 하니 성격도 쿨하고 엄청난 노력파여서 호감은 더해갔다. 덕질의 이유는 오만 가지로 넘쳐 흘렀다. 솔로 활동 기간에 비해 제법 많은 그의 솔로곡들은 취향 저격이었다. 나는 중저음을 좋아하는데 그의 목소리가 딱 그랬고 발라드는 물론 희한하게도 댄스곡이나 빠른 랩에서도 가사가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에 더 좋았다(요즘 노래들 정말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고 ㅠㅠ 느낌으로만 듣는데).
그가 어디선가 말했던 것처럼 그의 노래는 밤이나 낮이나 자기 전이나 아침이나 언제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에서 그의 솔로 앨범 첫 곡(The Beginning of..)에서부터 최근 앨범의 끝 곡(파도에게)까지 틈날 때마다 스밍(온라인 재생한다는 뜻의 스트리밍의 줄임말)한다. 이쯤 되면 나 완전 빠진 거지? ㅎㅎ 콘서트는 온라인이어서 오히려 편하게 관람하였다. 공식 팬 카페에 가입은 했는데 활동은 소극적이다. 하지만 ‘지후니만의 메이’들은 차고 넘치니 난 그냥 따스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 보고 샤이팬으로서 은은하게 버텨(hold on) 주려고 한다. 난 짝사랑이 좋다. ‘멀리서 보고’ 싶다. 그리고 누가 떡하니 제공하는 정보를 그냥 보기보다는 하나씩 그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니까. 그런데 덕질을 하다 보니 박지훈은 춤도 잘 추는 것이 아닌가. 아 이 친구 댄스가 특기였지.
그의 댄스는 다른 아이돌 스타나 그룹 내 다른 멤버와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박자를 절대 놓치지 않지만 다소 느린 듯한 느낌, 그러나 정확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머리를 많이 흔들지 않았는데(거친 느낌이 들지 않음) 그래서 얼굴 표정을 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스타일로 춤을 추는 것 상당히 어려울 것 같은데 많지 않은 나이에 내공이 꽤 쌓인 것 같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결국 그의 춤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 또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기준으로 나는 소위 ‘얼빠’(얼굴에 빠진, 즉 얼굴만 따지는)로 분류될 수 있는데 역시 요즘 말로 그는 ‘얼굴 열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복 받은 녀석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100% 선천적인 것만은 아니리라.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에 대한 유전자의 설명변량이 100%는 아닐 것이니.
그 밖에도 그의 팬, 아니 우리 팬들은 도대체 못하는 게 뭐냐며 그를 이상화/우상화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그는 실제로 하는 것마다 잘했다. 나도 이미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튼 그가 하는 것마다 잘 하는 비결은... 내 생각엔 근성+집중력+몰입... 그 시작은 ‘강한 성취 욕구/동기’(승부욕이기도)로 짐작된다. 지금은 덕질이 주제이니 그에 대한 분석은 다른 곳에서 본격적으로 해 보리라. 그때까지 나도 덕질의 내공을 좀 쌓아야 겠다. 덕질의 방법론은 무한할 것이니. 이번 박지훈 덕질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 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입시 등에 시달리는 한국의 10대들에게 아이돌은 일종의 휴식처이자 놀이터이자 비대면 심리상담가가 아닐까(팬 미팅이나 싸인회 등으로 대면의 행운을 누릴 수도 있기는 함).
게다가 아이돌은 사는 것에 약간 시들해진 나 같은 중년 아줌마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 가수들은 어르신들에게 하나의 아이돌(Idol; 우상; 偶像)이니 어쩜 아이돌로 인한 수혜는 조금 과장해서 전 국민에게 해당될 지도 모른다. 점점 꼰대로 변신 중인 남편도 BTS를 좋아하고 그들의 노래를 즐기는 것을 보면(물론 거기에는 국뽕{국가 자부심을 일컫는 신조어}의 영향이 있기는 한 듯) 말이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료해 주는 데에는 나 같은 임상심리학자들보다 아이돌 스타들의 몫이 훨씬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저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없고 배타성(나만 독점하는 것을 의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물론 아이돌 문화의 단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장점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덕질은 ‘몰입’의 또 다른 모습인데 몰입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므로 결국 덕질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하겠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아이돌들이 고맙다. 아하! 그래서 팬들이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거구나. ‘태어나줘서, 우리에게 와 줘서 고맙다’는 말(너희 부모한테는 그렇게 말하냐고 묻는 꼰대들의 지적질은 무시하자) 말이다. 사실 ‘덕질’을 감각, 심리, 행동, 사회적 요소 등 다양한 부분으로 분석해 볼까 했는데 이것이 내 순수한 덕질의 즐거움을 해치는 것 같아 일단 멈추고 싶다. 그런 분석 말고 그냥 딱 떠오르고 느낌 싹 오는 ‘덕질’의 원리에 대한 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좋아하면 알고 싶다. 알게 되면 좋아진다. 그리고 이 사이클의 즐거운 무한반복.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쳤던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작은 즐거움까지 주는 박지훈이 나는 고맙다. 이제라도 너를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 나의 이 덕질도 언제가 언젠가는 희미해지겠지. 하지만 내용이 뭐든 PC 작업을 하다 ‘저~장’버튼을 클릭할 때면 어김없이 그가 떠오를 것이고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그를 리~마인드하게 될 것이리라.
*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떠올려 보면 공감 갈 것임/ 생경한 신조어는 별도로 찾아보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