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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교통질서를 지키게 또는 안 지키게 만드는 이유

등록일 2021-09-27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3176

 

 

 

31

 

교통질서를 지키게 또는 안 지키게 만드는 이유

 

[ 겉같속달; 겉은 같지만 속은 다르다]

 

 

  어떤 사람이 교통질서를 잘 지킬까? 정직한 사람, 착한 사람, 양심적인 사람…  언제 교통질서를 잘 지킬까? 교통경찰이 있을 때, 사람이 많을 때, CCTV가 있을 때…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성향, 성격, 특성의 측면이고 ‘언제’라는 것은 그때 그때 변하는 상황이다. 교통질서를 지키거나 어기는 행동은 ‘초록 신호등으로 변한 횡단보도에서도 손을 번쩍 들고 길을 건너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예라고 대답만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줄임말로 이미 대중화된 표현임)가 아닌 꽤 복잡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깊은 밤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가 있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쯤 도로에 빨간불이 들어 왔다. 당연히 이 시각 이 도로에 횡단하려는 보행자는 없다. 어떻게 할까? 그냥 지나가도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왠지 신호등을 위반하는 것은 찝찝하다. 아주 오래전 TV 예능 프로그램 중에 한 밤중 한적한 도로에서 신호를 지키는 운전자를 발굴해서 소위 ‘양심 냉장고’라는 것을 선물하고 그 행동을 칭찬해 주었던 프로그램도 생각나고 어쨌든 ‘나’라는 인간, 적어도 신호 정도는 지키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STOP 하자. 잠깐의 유혹으로 인해 정지선을 살짝 넘은 차의 위치는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쨌든 신호를 지켰으니 만족스럽다.

 

  초록색으로 바뀐 안전한(?) 상황에서 다시 도로를 달린다. 다른 차들이 안 보이니 쌩쌩 달릴 만하다. 제한속도 60 킬로가  이 도로에 밤낮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융통성 없는 교통정책을 탓하며 속도를 높여 본다. 당연히 속도위반이다. 하지만 교통경찰은 커녕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차 하나 없으니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았고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게다가 평소 교통질서를 칼칼이 지켜온 것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것으로 오늘은 더 속도를 내 본다. 그렇게 스피드에 취해 쌩 지나고 보니 좀 전에 속도측정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뿔사! CCTV에 찍힌 것 아닐까. 아이고 왜 그걸 못 봤지? 괜찮아. 제한속도를 넘기기는 했지만 교통량이 적을 때는 다르게 적용될 지도 몰라… 

 

  이 운전자 어떤가. 양심불량인가? 이중적인가? 소심한가?... 아님 그냥 평범한 사람일까? 뭘 이런 거 가지고 양심까지 따져야 할까? 그래도… 여러가지 생각이 들 수 있다. 소위 프로이트 선생님의 이드(id), 에고(ego), 수퍼에고(superego)를 교통질서를 지키고 안 지키는 것에 적용해 보자.  첫째, 교통질서라는 것을 지키기 싫다. 그래서 안 지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속박하는 것은 싫고 나는 내 맘대로 할거다. 특히 외부에서 정해주는 규칙을 따르는 것이 제일 싫다. 이런 생각과 욕구가 지배적이다.  100% 이런 사람은 없지만 이런 식의 작동은 소위 본능으로 이것은 이드의 파워이다. 그런데 이것이 동시에 수퍼에고의 미작동은 아니다. 오히려 에고가 관련될 수 있다(뒤에서 설명).

 

  둘째, 교통질서를 꼭 지킨다. 먼저 수퍼에고의 작동이다. 소위 양심이다. 이것은 어릴 적 나의 어리석음을 혼내던 엄격한 부모(전형적 스타일/ 현실에서는 안 그런 부모도 많음)가 내 안에 들어와 자리잡은 것인데 부작용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편 내 안의 부모는 내가 괜찮은 사람 또는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완벽해야 하고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통질서 따위는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통질서를 지키기도 하고 안 지키기도 한다. 지키는 경우는 누가 볼 때 즉 다른 사람이 나를 지켜 볼 때나 CCTV가 나를 지켜보고 나에게 벌점이나 벌금을 매길 수도 있을 때이다. 이때 융통성 많은 현실의 나, 즉 에고가 활약한다.

 

  그런데 에고는 또 나를 교통질서를 안 지키게 만들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CCTV 가 없는 도로에서는 속도를 위반한다. 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위신이 깎이거나 금전적 부담을 주지도 않았으니) 때문이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 위반하기도, 하지 않기도 하니 그 적응력이 얼마나 뛰어난가. 소위 이 사람은 교통질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지만 안 지킬 줄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따라서 교통질서를 지킨다, 안 지킨다는 외형(겉은 같지만 속은 다르다: 겉같속달/ 글쓴이가 만든 신조어) 만을 보고 양심이 죽었느니 살았느니 단언할 수 없다. 그런데  요즘은 에고를 너무 잘 이용해 먹기만 하는  이들이 많아 언짢을 때가 많다. 그들은 양심불량 쪽보다는 에고 과잉 쪽이 맞겠다. 에고(아이고의 줄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