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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뇌에도 삼위일체가 있다

등록일 2021-08-23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3344

 

 

26

 

뇌에도 삼위일체가 있다.

 

 [ 셋(사람/말/악어)이 함께 ]

 

 

 하나로는 부족하다. 둘로도 부족하다. 셋이 함께 있는 것,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를 음식에 비유하면 ‘삼합’ 정도가 될 것이다. 대표적인 삼합은 홍어, 돼지고기, 묵은지를 한 겹씩 올려서 세 겹을 한꺼번에 먹는 홍어삼합일텐데 요즘은 다양한 조합으로 신박한 삼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 하나를 빠트린다고 생각해 보라. 뭔가 허전하겠지. 뭔가 모자라겠지. 그런데 우리 뇌도 이와 같은 삼합의 구조가 존재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하여 여기에서는 삼위일체라는 홀리(holy)한 단어를 써 볼까 한다.

 

 인간의 뇌는 생물진화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뇌 속에 조상이 산다’고나 할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뇌와 대뇌피질은 생명체의 긴 역사 중 가장 최근에 발달된 조직이다. 그래서 신피질(neocortex)이라고도 부른다. 피부와 반대로 뇌는 주름이 많을수록 좋은데 뇌의 피질은 올록볼록 주름져 있어 펼쳤을 때 표면적이 크다는 장점을 가진다. 똑똑한 구조다. 물론 다른 영장류와 포유류에도 약간의 주름이 있지만 인간의 뇌와는 비교 불가이다. 거기에는 뇌의 사령관인 전두엽을 비롯한 여러가지 엽(lobe)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 뇌의 맨 바깥쪽이다.

 

 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변연계(Limbic System)라고 하는 하나의 시스템을 볼 수 있다. 원형으로 죽 둘러 있어서 둘례계라고도 하는 이 시스템은 맨 가운데 달걀 같이 생긴 시상(Thalamus)과 시상 아래의 시상하부(Hypothalamus), ‘바다의 말’이 거꾸로 매달린 모양의 해마(Hypocampus) 두 쌍, 복숭아 씨 또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Amygdala) 두 쌍 등으로 이루어진다. 시상은 해부학적으로 뇌의 딱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뇌에 전달된 입력신호들을 여기저기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시상 하부는 간단히 말해 F4(Flight, Fight, Feed, Fuck 마지막 발음하지 말 것)의 기능을, 해마는 기억을,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 감지기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포유류도 가능하다. 지금 반려견이 옆에 있다면 차분히 살펴보라. 그 반려동물은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이가 누구인지 알며 주인이 귀가하면 날뛰며 주인에게 침 세례를 퍼붓지 않는가. 하지만 그 반려견이 인간을 100% 대체하지는 못한다.

 

 우리 척추 속에는 척수(Spinal cord)라는 신경이 존재하며 이것이 위로 주욱 올라가면 뇌와 만나게 된다. 뇌와 척수는 중요하기 때문에 중추 신경계(Central Nerves System)이라고 부르며 두꺼운 뼈로 둘러싸여 보호된다. 이토록 중요한 척수와 뇌가 대략 목 윗부분에서 만나기 시작하는데 머리 부분을 일종의 꽃이라고 생각하면 꽃받침과 줄기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이 뇌 줄기 즉, 뇌간(brain stem)이다. 이 부분은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되어 있는데 뇌로 감각 정보를 전달하고(상행) 또 신체로 운동 정보를 지시하는(하행) 통로이다.

 

 이 곳은 호흡이나 삼키기(먹었는데 못 삼킨다고 생각해 보라. 삼킨다는 것은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체온관리, 수면 등과 같은 기본적인 생명유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궁금해 왔던 인간의 ‘의식’이 존재할 후보가 바로 여기다. 왜냐하면 이곳은 각성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물모양으로 되어 있어 망상활성계(Reticular Activation System)라고 부른다. 앞의 두 가지 뇌가 그 기능을 잃어 버리고 감각과 운동 기능까지 꺼져버렸지만 이 뇌간의 기능만 유지될 때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식물상태가 옳은 표현)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중요한 뇌간이다. 그런데 이 뇌간은 파충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파충류에는 앞의 두가지 뇌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에 방영되었던 TV 외화 시리즈 중에 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이 드라마는 파충류가 지구를 침공하여 인간들과 벌이는 여러가지 놀라운 이야기이다. 제작한 이들의 놀라운 상상력을 칭찬하지만 생물의 진화 과정으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오늘의 요지: 인간의 현재 뇌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생각하는 뇌(인간)와 그 안에 느끼고, 기억하는 정서의 뇌(포유류) 그리고 또 그 아래에는 생명체를 살아있게 만드는 뇌(파충류)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를 신경과학자인 폴 맥린(Paul MacLean)은 ‘삼위일체의 뇌’(triune brain)라고 불렀다. 맥린은 이 세 가지의 뇌가 반드시 원활하게 의사소통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쩌면 이들 간의 부적절한 통합과 의사소통 곤란이 병리와 부적응을 초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식적으로는 우리가  ‘인간만의 뇌’를 작동시킬지 몰라도 늘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는 ‘파충류의 뇌’와 비이성적일지 몰라도 정(精)이 많은 ‘포유류의 뇌’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마치 사람과 말 그리고 악어가 한 팀이 되어 함께 떠나는 여행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