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투약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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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약의 딜레마
[ 루이체 치매 Vs. 파킨슨병 ]
몸이 아프면 약을 먹어야 빨리 낫는다. 증상에 맞는 약을 먹는다면 악화될 가능성이 낮다. 요즘은 정신과적 증상의 경우에도 약물 복용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특히 인지기능의 저하를 동반하는 신경과적 질환은 치매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소용되는 약물만 있다면 투약을 꺼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투약에도 딜레마가 있다.
파킨슨병은 뇌의 피질 아래(subcortical) 회색질(gray matter) 구조에 병리가 발생하여 운동장애를 일으키는 퇴행성 질환이며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 루이체 또는 루이소체(Lewy bodies, 신경세포의 비정상적인 단백질 집합체) 치매는 루이체가 뇌의 피질 아래 뿐만 아니라 피질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발생하며 파킨슨 증상 외에도 환시와 같은 정신증을 자주 동반한다. 문제는 바로 이 루이체 치매를 겪는 환자의 약물치료이다.
루이체 치매 환자들은 주의와 각성의 장애를 비롯한 인지기능의 저하에 더하여 그 양상에 변동이 심각하고 사람이나 동물이 집에 들어 왔다고 하거나 천장과 벽에 생생하게 보인다고 하며(믿기지 않겠지만 그렇게 보임. 일종의 환시) 이로 인해 공포스러워 하는 등 정서 반응을 일으킨다. 게다가 행동이 느릿느릿하고 구부정한 자세에 몸이 뻣뻣하며 보행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파킨슨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 환자들의 운동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항파킨슨 약물을 사용해야 한다. 불행히도 항파킨슨 약물은 환시와 같은 정신과적인 증상을 악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반면 이들의 정신과적 증상을 완환시키는 약물은 반대로 파킨슨증을 악화시킨다. 완전 딜레마이다. 각각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이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정말 난감하다. 그야말로 약물치료를 절묘하게 잘 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은 두 증상 중 어느 것이 두드러지는지, 우선적인 치료의 목표가 무엇인지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섬세한 판단은 전문의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두 증상이 반반이며 순전히 둘 중 하나를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기능이 좋아지는 대신 정신증은 더 악화되는 것과 정신증이 나아지는 대신 운동기능이 나빠지는 것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나라면… 아니다. 결단을 내리려다 가도 머뭇거려진다. 내가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정신이 멀쩡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가도 그래도 사람이 우선 움직일 수 있어야지 그 다음 정신이지… 정말 어렵다. 뭐 이 문제가 출산 중 위급사태에서 산모냐, 아기냐 보다는 낫다 싶지만 역시 고뇌가 깊어진다.
우리의 인체는 신비롭다. 그 자체로 완벽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뭔가 하나 둘 망가지기 시작하면 외부의 힘으로 그 조화를 회복하는 것은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어려운 것이다. 새삼 깨닫는다. 신체이든 정신이든 문제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가더라도 절대 그 경계선을 넘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은 막아야겠다는 것을. 즉 발병만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되도록이면 내 인체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조화 시스템을 깨트리지 않아야겠다 다짐해 본다. 이것이 다짐의 문제일 지는 모르겠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