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여름방학특집) 한 번은 프로이트(4)_프로이트에 대한 양가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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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 특집_한 번은 프로이트(4)
프로이트에 대한 양가감정
[ 대단하다 Vs. 대~단하다 ]
프로이트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가면서 또 다른 의미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그의 대단한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는 말하면 입만 아프고 아니 쓰려면 손만 아프고. 그와 그의 이론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대~단한 부분 몇 가지만 나열해 본다. 일부는 프로이트의 탓이고 일부는 세상 사람들의 탓이고 또 일부는 나의 무지 탓이다.
1.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는 아니다(어쨌든 정신분석학의 최고 대가임에는 틀림 없다).
일반서는 물론 전문서적에서도 프로이트를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라고 소개한다. 나도 수업시간에 그렇게 말해 왔다. 1900년에 <꿈의 분석>이 출간된 해를 정신분석의 시작이라고 본다는 말의 출처는 어디일까. 프로이트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정신분석학은 안나 O. 의 주치의 샤르코 브로이어가 시작한 것이 맞다.
다만 프로이트는 그것을 일관성 있게 언급하지 않아 우리를 좀 헷갈리게 했다. 게다가 그를 흠모했던 전기작가들의 열띤 노력이 그렇게 보이게끔 만들었던 것 같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의 전유물이 아니다. 프로이트학파가 있고 분석심리학을 한 융도 있고 개인심리학을 한 아들러도 있고 기타 등등 매우 많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피에르 자네라는 당시 저명했던 정신분석학자도 있다.
2. 무의식의 존재를 주창한 사람은 프로이트만이 아니었다(어쨌든 무의식의 존재를 가장 자신있게 믿었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무의식‘하면 단연 프로이트다. 우리는 무의식을 마치 프로이트가 처음 콕 집어 말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은 한 사람의 영웅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 영웅의 출현을 북돋우는 분위기는 집단지성이나 민중에 의해 서서히 만들어진다. 무의식, 본능 이런 개념들은 이미 이전부터 있어 왔고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과격한 철학자 니체의 저작물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니체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니체의 책은 읽지도 않았다고 했다는데. 여기서 프로이트가 니체의 사상을 알았네, 몰랐네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니체가 쓴 책들을 보면 프로이트의 무의식/의식, id/ego 등과 유사한 개념들이 나오는데 나도 프로이트의 개념과 유사해서 처음에 깜짝 놀랐다. 한 가지 프로이트가 정말 대단한 것은 그 시대에 억압된 성(性)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인정.
3. 가족이나 지인을 내담자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선 했다(언행이 불일치할 수 있음을 보여 주어 우리에게 인간적 동질감을 주었다).
이것은 심리치료의 기본 아닌가. 프로이트에게는 이런 부분이 꽤 있었던 것 같다. 타인은 안 되지만 자신은 된다는 식의. 흡연을 성적(性的)으로 해석하지만 정작 자신의 흡연은 그냥 좋아서 피는 것이라고 했단다. 훌륭한 학자라면 자신에게 더 철저해야 하는 것 아닐까.
더 우려가 되었던 부분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사랑하는 딸 안나를 내담자로 삼았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왜? 부모에게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다니. 그것도 성적(性的) 공상이나 비밀이나 뭐 그런 것에 대해서 말이다. 막내딸 안나는 참 착하기도 하지. 그녀 또한 훌륭한 정신분석가가 되었지만 아버지에게 정신분석을 받는 동안에 얼마나 심정이 복잡했을까. 괜스레 안나의 심정이 되어 본다.
4. 내담자를 카우치에 눕혀서 치료하는 중에 졸았다(어쨌든 이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는 쿨했다. 치료자도 치료 중에 무의식 상태가 될 필요가 있다고 합리화(?)했지만).
이래도 되는 것일까. 정신분석을 받고 있는 한 지인에게 물어보니 카우치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자유연상을 하고 있는 동안 분석가가 꽤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데 그 분석가가 뭐하고 있는지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있는지 가끔씩 궁금하다고 한다. 정신분석이 아니어도 심리치료라는 과정은 사실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이유는 내담자에게 엄청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하게 되어 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내담자의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고 이러한 느낌이 반복된다면 이 자체를 치료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치료실 밖에서도 내담자가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상황을 본의 아니게 반복하는 지 등등. 아마 프로이트도 그 정도는 기본으로 했겠지만.
5. 처제와의 불륜설이 있다(어쨌든 자신의 이론(성 본능의 강한 힘)을 입증하였다).
프로이트의 가족과 함께 살았던 처제 민나와의 불륜설이 있다. 그와 관련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는데 정황 증거로 볼 때 합리적 의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도덕성(그의 초자아와는 별개로 세상의 일반적인 잣대)을 자세하게 다루고 싶지는 않다. 그가 쓴 글 중에 부부의 성적 권태에 대한 해법으로 불륜이 언급되기도 하였으니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언행일치라고 해야 하나(?).
이러한 점들이 프로이트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를 방지해 주어 다행이다. 하지만 아내와 처제 두 자매의 관계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점은 이해해 주기 싫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남성 중심적으로 펼쳤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아마 오늘날 같으면 페미니스트에게 엄청 공격 받았을 것이다.
6. 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하지 못했다(어쨌든 지금까지 그의 이론만으로도 치료된 환자들이 엄청 많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과정을 꼼꼼하게 보고한 사례들은 유명하다. 그 중에는 그에게 50년 간 정신분석을 받은 남자도 있다. 이 사례에 대해 드는 생각은 2가지이다. 라포가 잘 형성되었거나 치료가 안 되었거나. 개인적인 의견은 후자이다. 그리고 스치는 또 하나의 생각은 그 남자 부자(당시 비용과 시간을 부담할 수준이라니)였구나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 전집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그의 환자들(예, 어린 한스 등)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 중에는 실제 자궁에 해부학적인 이상이 있어서 신경증으로 보이는 신체증상들을 호소했던 것 같은 한 여성이 있었다. 코(性的 상징) 모양을 바꾸는 수술을 받게 하였으나 수술 과정의 실수로 인해 그 여성은 이후 합병증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다.
실패 경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프로이트가 많은 이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했을 것이라고만 막연하게 추정해 왔던 것 아닐까. 그래도 용서가 되는 이유는 프로이트 사후 지금까지 그의 이론만으로도 프로이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하여 그야말로 이론으로 치료한 사람의 수가 엄청나다는 점 때문이다.
7. 일부러 숨기거나 소각한 자료가 많이 있다(어쨌든 공개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명성은 유지되고 있다).
잘하고 잘난 것은 드러내고 못하거나 못난 것은 숨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프로이트도 그랬다. 스스로 숨긴 것도 있지만 후대 사람들이 숨긴 것도 있다. 하지만 숨긴다고 모든 것이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가족과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가사 도우미의 증언, 결국 의절했지만 역시 오랜 시간 서신 교환을 해 왔던 동료 플리스와의 편지 등 곳곳에서 프로이트의 실제생활이나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느낌들을 알 수 있는 출처들이 꽤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은 당시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고 이후에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한 학자의 최종적인 이론은 처음 그 이론의 실마리만을 잡았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스스로 숨길 필요는 없었을 텐데…
수업에서 한 학생이 내가 많이 사용하는 어구 중에 인상 깊은 것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지금이 그 어구를 사용할 타이밍이다. 프로이트의 위와 같은 ‘대~단한’ 점에도 불구하고 역시 프로이트는 ‘대단하’다. 그는 분명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영원히 현대인의 마음 속에서 의문을 던지며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