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여름방학특집) 한 번은 프로이트(2)_노벨상은 아니어도 골드 메달[앞면은 프로이트 & 뒷면은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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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 특집_한 번은 프로이트(2)
노벨상은 아니어도 골드 메달 [ 앞면은 프로이트 & 뒷면은 오이디푸스 ]
프로이트는 이상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아니 존경받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러하듯 자신이 받고 싶은 것과 세상이 주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프로이트는 과학자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노벨상(아마도 생리의학 부문?)을 받고 싶어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벨상 후보로 늘 거론되었다고 하나 당시 과학자들(예, 아인슈타인 등)에게 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으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대신 그는 괴테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런 경우에 쓰라고 괴테는 우리의 세상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나 보다. ‘인생은 2가지로 이루어진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
노벨상 수상 불발이 안스러웠는지 어쨌든 프로이트는 50세 생일에 지인과 제자들은 골드 메달을 선물 한다. 비록 노벨상으로 주어지는 메달은 아니었지만. 메달의 앞면은 프로이트의 얼굴, 뒷면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오이디푸스의 모습이었다는 점이 프로이트를 만족시켰을 것이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프로이트가 몹시도 좋아했을 것 같다. 오이디푸스는 생부를 죽이고 생모와 결혼하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서 자신의 눈알을 뽑아버린 채 떠돌던 비극의 왕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는 수수께끼로 장난질을 쳐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게 만들었던 스핑크스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물리친 시대의 영웅이었다. 불행히도 그 일로 인해 왕으로 추대되는 바람에 그의 가족사는 비극으로 치닫고 말았지만 말이다.
괴물 스핑크스에게 신체적 공격을 가한 것인 아니라 영리한 두뇌로 인간에 관한 비밀(문제: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움직이는 것은? 정답: 인간)을 지혜롭게 풀어낸 그 자가 바로 오이디푸스다. 스핑크스의 질문과 오이디푸스의 답안은 우리에게 인간발달에 관한 깊은 통찰을 준다.
골드 메달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수수께끼를 푸는 자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남자가 되었다.” 이것은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를 쓴 아테네의 비극문학 장인 소포클레스의 말이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마음을 사로잡은 키워드의 후보는 ‘유명한’, ‘수수께끼’, ‘푸는’, ‘어마어마한’, ‘권력’, ‘남자’ 로 추측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되었다’가 아닐까. 꿈꾸었거나 바랬다가 아니라 ‘되었다’라는 것, 이것이 중요했으리라. 그러니까 이 문장은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프로이트를 120% 흡족하게 했으리라.
프로이트는 신화 속 오이디푸스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었건 것이 아니었을까.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평생 혼자 살며 자신의 아버지이자 오빠(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인 오이디푸스를 돌보았다고 하는데 이 지점에서 왠지 안티고네는 프로이트의 딸 안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구강암으로 수 십 차례 수술을 받고 투병하던 프로이트를 간병한 사람은 어머니(주의: 프로이트는 어머니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고 함)도, 아내도, 큰 딸도 아니었고 시집 안 간 막내딸 안나였다. 참으로 프로이트는 그의 이론과 함께 내 머리 속에서 수만 개의 흥미롭지만 위험한 시나리오들을 만들어 내게 한다. 그래서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다고 할까.
과학자로 인정 받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를 문학가로 인정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를 철학자로도 보았다. 여러모로 잘난 데다가 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 중 하나(지금은 프로이트 전집으로 출판된)에서 인간의 3가지 상처에 대해 언급하였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우주적 억압’이 그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다윈의 진화론 이전까지 인간은 동물과는 구분되는 성스러운 존재라고 믿었던 ‘생물학적 억압’이다.
마지막은 바로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존재를 힘주어 말하기 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의식적인) 심리적 억압’이다. 그럴듯하지 않는가. 이렇게 해서 프로이트는 자신을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의 레벨에 올려 놓았다. 자신이 세운 이론의 과학성을 증명하려고 애썼지만 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언짢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3(삼) 세번의 완결성에도 딸 들어 맞는데 말이다. 프로이트도 좋아했던 의식, 전의식, 무의식의 3가지와 id, ego, superego의 3가지처럼.
일기에 쓴 내 마음이 솔직한 걸까?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 내 마음이 더 솔직한 걸까? 프로이트는 저술도 많이 했지만 편지도 엄청 썼다. 편지는 일부 소실되기도 하였고 일부는 봉인되었다. 이것은 그의 명성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는 측근의 조치라는 설이 있다. 그를 지켜주고 싶은 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헤아려 주고 싶기도 하면서도 실망스럽다. 어쨌든 프로이트는 편지에서 속마음이 많이 드러난 것 같다. 한 편지에 이렇게 썼단다. “나는 결코 겸손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발견한 내용들이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을 그렇게 평가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위대한 발견이 꼭 고귀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뭐 어떻다는 건가. 자신이 위대하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헷갈린다. 대놓고 잘난 척 하기가 뭣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생색과 겸손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인가. 멋있는 프로이트의 어법이 때로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그 짜증은 모호성에 대한 나의 인내력 부족의 지표이지만 말이다.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영원한 화두로 남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매우 과격한 주장을 하면서도 자기 생각의 허점을 스스로 지적하곤 하였다(일종의 선수 치는?). 하지만 그가 마음으로 그것을 허점으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타인으로부터 지적 받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과 자신이 내놓은 이론의 불완전성을 툭 던져 놓는 것이 자존심 센 프로이트가 할 수 있는 안전행동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id와 superego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곡예에 멋지게 성공한 프로이트의 ego에게 감히 나는 골드 메달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