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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여름방학특집) 한 번은 프로이트(1)_프로이트의 안나(Anna)들

등록일 2021-07-05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3332

 

19

 

* 여름방학 특집_한 번은 프로이트(1)


프로이트의 안나(Anna)들


[ 여동생, 막내딸, 그 유명한 환자 ]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년 5월 6일~1939년 9월 23일)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 친구, 동료, 스승, 추종자, 환자 등등. 학문적 동지이자 제자(?)였던 많은 사람들(예, 융이나 아들러 등)이 그에게 푹 빠졌다가 차례차례 등을 돌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프로이트 사후 100년이 좀 못 된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는 그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맹렬하게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이래저래 그는 영원한 스타이다.

 

 프로이트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한 마디로 이성과의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성의 경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상응하는 일렉트라 콤플렉스도 있지만 이것은 융이 심화한 개념으로 프로이트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같이 딸바보가 많은 우리 사회에서 아빠와 딸 그리고 엄마 이렇게 삼자 구도에 대해서도 정신분석학적인 참신한 해석이 없을까 궁금해진다. 프로이트 또한 딸바보까지는 아니어도(어쩜 딸바보였을지도) 막내딸을 매우 아꼈고 그 딸은 아버지를 간병하였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아버지의 학문적 후계자로 남게 되었다. 그녀가 바로 자아 방어기제로 유명한 안나 프로이트(1895~1982)이다. 그런데 프로이트에게는 2명의 안나가 더 있었다. 

 

 프로이트가 살던 그 시절 그러니까 18세기 중후반에서부터 19세기 초반 유럽에서는 안나(Anna)라는 이름이 유독 인기가 많았던 것일까? 어찌됐건 그 수많은 안나들 중에 프로이트에게는 3명의 유의미한 안나가 있었다. 여동생, 막내딸 그리고 그 유명한 환자 안나 O. 이다. 첫 번째 안나는 맏이인 프로이트 바로 아래 태어난 남동생이 생후 7개월 만에 죽은(당시 프로이트가 남동생이 죽고 나서 안심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그때 프로이트 나이가 2살인 것은 감안하면 이것이 사실일지는 의문) 다음에 태어난 여동생이 안나이다. 

 

 남동생이 죽은 후에 태어난 사실 상 처음 생긴 동생, 그것도 여동생. 이제 프로이트는 맏이가 되었고(어머니와 동년배인 이복 형님들이 있었지만) 오빠가 되었다. 여동생 안나와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추측하건대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생인, 그것도 여동생을 이뻐라 하지 않았을까. 나중에 이 여동생을 닮으라는 뜻에서 딸 중 한 명에게 고모와 같은 이름을 지어 주었으니 말이다. 프로이트의 다른 여동생들이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것과 달리 여동생 안나는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목숨을 건졌다. 그녀의 아들은 홍보(PR)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버네이즈(1891~1995)로 ‘베이컨과 계란 프라이’라는 미국식 아침식사의 전형을 만들어낸 광고계의 대부이다. 그러니까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외삼촌이 프로이트라는 것이다. 헐 외삼촌이 프로이트라니. 하지만 버네이즈 또한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두 번째는 막내딸 안나이다. 프로이트는 딸1(마틸드), 아들1(장 마르탱), 아들2(올리버), 아들3(에른스트), 딸2(소피), 딸3(안나) 이렇게 3남 3녀를 두었다. 마틸드는 프로이트의 스승인 조제프 브로이어의 부인 이름을, 장 마르탱은 최면술의 대가 샤르코의 이름을, 올리버는 클롬웰 장군의 이름을, 에른스트는 브뤼케 교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여기까지는 특정 인물에 대한 존경심이었던 것 같다. 거 자녀들 이름 한 번 거창하다. 뭐 누군가를 닮으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짓는 것은 흔하지만 프로이트는 의미 부여하기 대장이니까 더 이해가 되기는 한다. 다른 사람 이름을 따온 것은 아니지만 딸2 소피는 지혜를 뜻하니 지혜롭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겠고. 

 

 그럼, 막내딸 이름의 작명 동기는? 사랑스러운 여동생 이름을 붙였으니 훨씬 마음이 가는 아이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여섯 째 아이쯤 되면 새삼 새로울 것도 없었고 아들을 낳으면 절친인 플리스의 이름을 지어줘야지 하고 있었는데 딸이 태어나자 그 시대에 인기도 있고 부르기도 좋은 이름을 그냥 지어준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 동안 자녀들의 이름에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해 왔으니 조금은 가볍게 하지만 다시 한 번 자신의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여동생의 이름을 붙여준 것일까. 내 머리 속에서 추측이 난무한다. 어쨌든 이 막내딸은 아버지에게 가장 헌신한 자녀였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프로이트는 이런 막내딸에게 유산을 몰아주기 위해 다른 자녀들에게 유산상속을 포기하게 하였다니 프로이트의 막내딸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안나는 이름도 미스터리한 안나 O.이다. 베르타 파펜하임(1859~1936)이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었지만 브루이어와 공동 저작한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에서 히스테리 사례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가명으로 유명하다. 가명을 썼다지만 그 당시 한 처녀에 관한 이러저러한 배경 설명만으로도 뉘 댁 규수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고 하니 그녀도 신상이 털러 나름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나 O.는 브루이어의 환자였고 프로이트는 그녀의 히스테리 증상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안나 O.를 직접 치료했다고 자동 오해하고 있다.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안나 O.는 아버지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신경증적인 증상을 겪었고 브로이어에게 치료를 받았으며 오늘날로 말하면 사회사업가로서 평생 미혼으로 사회활동을 벌였고 아동과 여성의 복지를 위해 헌신했다. 그녀는 치료 과정 중에 브로이어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고(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전이’ 현상) 아내와 돈독했던 브로이어는 그녀의 치료를 중단했다고 전해진다. 안나 O.를 검색해 보면 위키피디아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상징하는 옷차림(턱 밑까지 단추를 채운 드레스를 입은)에 강렬한 포스를 풍기는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보니 세 명의 안나 모두 대단한 여성들이 아닌가. 단지 프로이트의 여동생, 프로이트의 딸, 프로이트의 환자로만 기억하기엔 미안하다. 그들은 안나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그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