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내 가족 병의 역사 [내가 아픈 까닭에 관한 통찰하는 방법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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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 병의 역사
[ 내가 아픈 까닭에 관해 통찰하는 방법 한 가지 ]
건강할 때는 건강의 중요성을 모른다. 병이 나면 그제서야 후회를 하고 때로 고생을 엄청 한 뒤에 건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모든 가정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거기에는 병의 역사가 얽혀 있다. 어렸을 때는 가족 중에 누가 아파도 그냥 아픈 줄로만 알지 어떤 병을 앓았는지 모른다. 어른들도 자세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점차 커가면서 ‘아버지는 고혈압, 어머니는 당뇨’(하나의 예시)라는 알게 되며 자신에게도 고혈압과 당뇨에 걸릴 취약성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이 역시 간과한다.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사, 특히 자신의 어린시절에 상당히 많은 의미 부여를 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사실 왜곡된 기억도 많지만 정확하지 않은 그 기억마저 자기 삶의 주인공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심리적 환경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심리적 환경이 아니라 신체적 환경에 관한 것이고 이는 나 자신 하나에서만 그치지 않고 가족과 공유하고 시간적 연결성을 가지며 무엇보다 나의 존립 자체와 관련되므로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건강심리학 수업시간에 부여하는 과제가 있다. 바로 ‘우리 가족 병의 역사’이다. 가족의 범위는 임의적이다. 1인 가족에서부터 N촌까지 다양하다. 혼인관계로 이루어진 가족은 혈연이 아니지만 엄연한 가족이므로 남남도 포함된다. 자신이 가족의 범위로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그 사람의 개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신체질병 외에 정신적인 문제까지도 과감하게 포함시키곤 하는 학생들도 볼 수 있다. 좋은 자세이다. 우리는 건강하면 신체건강만 생각하지만 정신건강도 엄연히 포함된다. 역시 심리학을 가르친, 배운 보람이 있다.
이 과제를 하기 위해 학생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살피게 된다. 필요하다면 가족 인터뷰도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은 가족 간 대화를 기회를 가지고 본의 아니게 효도도 하게 된다. 부모님께 건강에 대해 여쭤 보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는 ‘효도’(요즘 세상에는 실종된 단어) 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학생들도 과제를 핑계로 가족들과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후기를 밝히곤 한다.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렴풋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특정 느낌과 행동의 원인을 이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최근 들어 발생했지만 모르고 지나갔던 가족의 병원력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유전의 영향인지, 공유하는 환경의 영향인지 특정 질병이 가족 내에 많거나 띄엄띄엄 보이지만 지속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먼 미래의 자기 모습을 예측해 볼 수 있게 된다. 신체건강 자체를 다루는 가족의 방식 또한 전차만별이다. 그것이 심리에도 영향을 주고 성격에도 영향을 주며 정서적인 문제까지 발생시킨다. 하지만 평소 과도하게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개인 삶과 내면의 특정 영역에서 벗어나 가족의 역사, 그 중에서도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병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 동안 수용할 수 없었던 부분을 납득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 적어도 그 동안 간과해 왔던 현재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미래에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시작점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에는 건강에 한 번 주의를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