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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민들레 아이 Vs. 난초 아이

등록일 2021-05-03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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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아이 Vs. 난초 아이 


[ 아이를 가만히 관찰하라. 그리고 봐 가면서 하라 ]

 

 난초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민들레가 되고 싶은가.  질문을 바꿔 보자. 난초를 키우고 싶은가 아니면 민들레를 키우고 싶은가. 일단 하나를 결정하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시다시피 난초는 키우기가 까다롭다. 난초에 핀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흔히 보는 꽃과는 달리 뭔가 고고한 자태에 은은하고 진한 향기가 그야말로 귀티가 줄줄 흐른다. 난초에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정말 좋지만 그것이 어렵다. 

 

 반면 민들레는 어떤가. 민들레의 호가 ‘길가에’라고 해도 될 정도로 민들레 하면 길가의 민들레를 생각하고 또 말한다. 길가의 민들레를 캐어 화분에 옮겨 심고 애지중지 키운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민들레는 그 만큼 흔하고 흔한 꽃이며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길에서도 그 생명력을 발산하는 그야말로 잡초 같은 꽃이다. 내 어머니 세대들은 민들레를 심지어 꽃으로 보기보다는 먹은 야채로 인식하신다. 물론 먹을 때는 청정한 자연 속에서 캔 민들레여야 한다. 먹을 수 있다는 것만큼 실용적인 것이 있을까.

 

 그럼 다시 질문을 바꿔 보겠다. 내가 부모라면 난초 같은 아이를 키우고 싶은가 아니면 민들레 같은 아이를 키우고 싶은가. 당연히 의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부모의 의견과 선호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자녀가 난초일지 민들레일지는 복불복이다. 난초인 줄 알고 애지중지 키웠는데 알고 보니 민들레여서 특별히 애지중지의 효과가 별로 없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민들레처럼 씩씩하게 키우자 하였는데 부모의 마음과 달리 내 아이는 손이 참 많이 가는 난초 같은 아이임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공개한다. 

 

 난초와 민들레는 타고나는 사람이 기질이며 특히 반응 민감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난초 같은 아이, 민들레 같은 아이라는 표현은 스웨덴식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온실 속 화초 같은 아이, 잡초 같은 아이라고 하면 맞겠다. 그래도 그렇지. 미래가 창창한 아이를 잡초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고 귀여운 노란색 꽃을 피우는 민들레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싶다. 그러니까 난초는 까다로운(difficult) 기질을, 민들레는 순한(easy) 기질을 대변한다.

 

 모든 어린 아이는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살펴가며 키우자. 현대인들의 주요한 판단의 기준인 가성비를 굳이 꼼꼼히 따질 것까지는 없지만 내 아이의 기질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양육방법을 적용해 보는 것이 좋겠다. 특히 난초 같은 아이는 까다로운 기질로 인해 양육자를 일찌감치 지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들은 난초를 키우듯이 민감하게 양육하고 서포트 하면 정말 피우기 힘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다. 

 

 그러나 키우기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를 하면 금새 난은 시들어 버린다. 물론 민들레 같은 생명력 이 강한 식물의 씨앗도 대도시의 복잡한 16차선 도로 한 복판에 떨어진다면 싹을 틔우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화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식물을 사서 집에 가지고 와 키우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유전의 힘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자녀는 결국 우리의 기질을 어느 정도 닮았을 것이니 자신과 맞지 않는 기질의 자녀 또한 몸과 마음을 다해 수용해야 할 것이다.  가만히 주변의 아이들을 관찰해 보자. 민들레? 난초? 아님 반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