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혹시 걱정을 노력으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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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걱정을 노력으로 착각?
[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걱정이라도 하는 것이 나을까. 정말? ]
‘Don’t worry, Be happy’라는 올드 팝송의 노랫말은 클리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별다른 감흥이 없고 오히려 마음 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행복하고 싶다구. 다만 걱정이 좀 많을 뿐’. 걱정 빈도가 0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내 머리 속 생각 주머니에 걱정 거리를 하나 둘씩 넣어 버릇하면 금방 주머니가 꽉 차버린다. 그래서 실제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머리와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뭔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듯한 느낌으로 나른해진다. 어쨌든 생각하는 것도 뇌의 운동이니 큰 범위에서는 활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면 걱정을 많이 할수록 피곤한 것도 사실이리라.
어떤 상황에서 속수무책일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걱정이라도 해야지’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생각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그에게는 걱정이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깔려 있고 그렇게 믿는 한 그 사람에게는 걱정이 문제해결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걱정은 외부의 스트레스 자극(stressor)으로 유발된 생리적 각성을 감소시킨다. 동시에 미래에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예측할 것이라는 일종의 착각도 일으킨다. 이것이 자주 반복된다면 걱정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 된다. 그래서 소위 걱정병, 즉 범불안장애(General Anxiety Disorder)를 가진 사람들에게 ‘걱정 좀 하지 말라’는 조언은 하나마나한 것이 된다. 그들이 얼마나 걱정을 많이 다양하게 하는 지 보다는 걱정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걱정이 긍정적인 기능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당사자에게는 좋게 작용하므로 걱정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은 어렵다.
‘흰 북극 곰 실험’ 결과에 근거할 때,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걱정할 수밖에 없게 되니 단순히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보다는 역시 걱정하는 영역을 벗어나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특정 생각을 대치하는 것보다는 공간이동을 통해 걱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을 벗어나거나 몸을 움직여 활동하는 것이 더 좋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환경, 특히 공간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집에서는 쉬고 학교에서는 공부하며 직장에서는 일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공간에 많이 머무느냐에 따라서 주로 무엇을 생각하고 하는지가 결정된다. 혹시 걱정을 주로 하게 되는 공간이 있다면 일단 그 곳에서 벗어나 보라. 최소한 옆 방으로 옮겨가 보라. 한결 나아질 것이다.
걱정은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각이지만 말을 통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대개 ‘OO 하면 어쩌지?’라는 미래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흔한 표현으로 자신도 모르게 내뱉어 진다. 안절부절한 느낌이 동반되면서 이 말을 더 반복하게 된다. 역시 사고(thought)와 언어는 긴밀한 사이다. ‘OO 하면 어쩌지?’ 라는 물음을 말로 하게 될 때마다 마치 세트 메뉴처럼 ‘OOO 하면 되지’라는 답을 해 보면 어떨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혼자 미래를 비관할 것만이 아니라 대안이라도 제시해 보자. 그러다 보면 한 가지 정도는 실제로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병 환자의 속마음이 조금 이해되었다면 ‘Don’t worry’ 보다는 ‘Do anything’(뭐든 하세요.)’이라고 말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