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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북극곰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등록일 2021-03-15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3333

03

 

북극 곰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 하지 않으려면 일단 해야 한다는 것 ]

 

 푸근한 몸매에 하얀 털이 탐스러운 흰 북극 곰을 직접 본 적은 없다. 맹수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센 놈임에 틀림 없는 흰 북극곰이 우리의 현실에서는 추운 북극에서도 빨간 캔에 담겨진 중독성 강한 달달하고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는 모습으로 CF 모델로서 떠오른다. 그런 흰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자. 지금부터 3분 동안 말이다. 3분이 길면 1분도 좋다. 시작! 그만! 시간이 경과했다 치자. 흰 북극곰을 생각하지 않기에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수이지만 성공한 경우도 있다. 성공의 비법은? 맞다. 딴 생각을 하면 된다. 뭐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북극곰만 아니면 된다. 분홍 코끼리를 생각해도 좋다. 초록 돼지를 떠올려도 좋다.

 

 이 허접해 보이는 지시는 엄연한 검사이다. 사고억제(thought suppression)를 측정하는 것이다. 억제하라고 하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 억제가 되지만 이내 억제가 안 되고 오히려 점점 더 억제하려고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마치 주사바늘이 머리 속으로 쑥 들어와 생각을 주입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이것을 침투적/침입적(intrusive) 사고라고 한다.  그렇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머리 속으로 생각하지 않으려면 일단 그 무언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다음에 그것을 하지 않는 쪽으로 진행된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강박사고(obsession)를 체험하는 방법으로 내 수업의 단골 메뉴이다.

 

 여러 차례 이 지시에 따라 해 본 사람도 할 때마다 말려든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사고억제가 가능했던 사람 중에 흰 북극곰 대신 분홍 코끼리를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실험을 반복할 때마다 분홍 코끼리를 생각함으로써 북극곰 생각을 하지 않는 미션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느 순간 분홍 코끼리를 생각하자마자 흰 북극곰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사고억제가 가능했건만 결국 그 2가지는 연합학습이 되었던 것이다. ㅎㅎ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뭔가를 억지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수 밖에. 하지만 이왕이면 다양한 것에 눈을 돌려서 최대한 특정한 것이 연합되지 않도록 하자. 이러한 과정이 바로 OO에 신경쓰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OO에 더 신경쓰게 만드는 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