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세상에 나쁜 성격은 없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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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성격은 없다지만
[ 나쁜 인격은 존재한다 ]
세상에 나쁜 성격은 없다고 했다. 바로 앞에서. 이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에 대처해 가는 과정에서 그런 성격이 굳어졌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일방적으로 성격이 나쁘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쁜 인격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굳이 인격이라고 한 이유는 인격이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성격의 6요인 모델에서 그 강력한 빅 파이브(Big-5) 성격 모델에 이 한 가지를 추가하면서 나는 나쁜 인격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한 가지 요인으로 인해 그 동안 쌓아왔던 인생의 성과를 한 순간에 무너트릴 수도 있다. 이른 바 다 된 밥에 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정직/겸손(honesty/humility)’ 즉 ‘H 펙터’이다. 왠지 초등학생들에게 착한 아이 되기를 가르칠 때나 언급할 것 같은 ‘정직’이다. 현대사회에 넘쳐나는 신박하고 화려한 신조어들 사이에서 ‘정직’은 뭔가 올드하고 촌스러운 느낌까지 준다. 하지만 진실하고 정직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잘난 체 하지 않는 성격은 시대를 초월한 미덕이 아닐까. 급변하는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세련되고 융통성 있게 처신하느라 기본을 잠깐 잊고 있었던 것일 뿐. 아니 언제 어디에서나 그런 조용하게 드러나지 않는 H 펙터 충만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거나 없는 것으로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H 펙터만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고 성격 특성 중에서 H 펙터가 강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들은 외향적인 사람처럼 용감하지 않고 친화성이 강한 사람처럼 관계에 영향 받지 않으며 새롭게 경험한 것에 대해서도 떠벌리지 않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타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위기상황이 되면, 정말 하나하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들의 진가가 드러난다. 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 때문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강단이 있고 행동이 시원시원하여 마음으로 지지했던 유명인들 중에 조금 마이크로한 렌즈로 들여야 보았을 때에나 알 수 있는 비리나 결점, 위법은 아니지만 지나칠 수 없는 위반 등이 드러나 소위 사회적 장례식을 치른 여러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이 바로 H 펙터이다.
H 펙터가 낮은 성격특성은 특별히 ‘어둠의 3인조(Dark Triad)’라고 부른다. 마치 3인조 복면 도둑/강도와도 같다.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이 3명의 멤버이다. H 펙터의 부정적인 끝은 심각한 정신병리나 범죄라고 볼 수 있겠다. 얼핏 보면 그 특징을 조금만 가지고 있을 때 멋있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특징을 좀 많이 가지게 된다면 이들은 타인들과 진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다른 성격 차원(사교성, 성실성 등)을 적응적인 수준으로 가졌을 지라도 그 사람의 최후 모습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코로나 19의 시대를 거치면서 한 인간의 행적이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속속들이 드러날 수 있는지를 통해 감탄을 넘어 두려움 마저 느껴본 우리들이다. 사회의 구조적 투명성이 무서워 자신의 처신을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동안 잊고 있던 내 속의 잠자는 H 펙터를 한 번씩은 깨워볼 필요가 있겠다. 그래야 애써 일궈온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끝까지 행복하고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으리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그냥 착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