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몸을 위한 소비, 몸을 향한 열망(2)
몸을 위한 소비, 몸을 향한 열망
노동의 도구에서 향유의 대상으로 신체에 대한 이데올로기 변화
몸에 대한 이데올로기 변화는 20세기에 이르러 급격히 일어났다. 플라톤 이후 데카르트의 시대에까지 철학자들은 신체(body)와 정신(mind)을 이원론적 대립관계로 파악하였다. 즉, 정신은 인간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으로, 신체는 비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서 인간성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이 대두되면서 변화를 맞게 된다. 사르트르(1943)가「신체는 자아이고, 자아는 신체로서 존재한다(The body is the self, and that the self is the body)」고 언명한 것처럼, 인간의 본질인 자아(self)를 신체(body)로 보기 시작하였다. 이후 산업화를 거쳐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청교도적 금욕주의는 해체되고 성의 해방, 여성의 해방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자 인간의 몸에 대해서도 의미의 재구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90년대 이후 슈퍼모델, 운동선수, 연예인과 같은 대중스타가 우리 삶의 전형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본으로서 자신의 육체를 과시하면서 우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육감적인 여성과 남성의 젊고 섹시한 신체이미지는 대중매체, 방송, 광고영상의 시각적 소재로서 거침없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진 8 캘빈클라인 여성내의, 남성내의 광고
아름답고 섹시한 이상적인 몸(ideal body)에 대한 대중매체의 숭배는 일반 여성들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신체가 심미적 대상으로 위치가 격상되는 과정에서 에로티시즘이 탄생하였다. 그래서 현대인의 몸은 향유하고 탐닉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비의 대상이자, 동시에 자신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자본이 된 것이다. 이렇게 신체의 사회적 의미를 처음으로 지적한 사회학자 베블렌(1899)은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귀족 여성의 가느다란 손가락과 가냘픈 허리, 그리고 하얀 피부와 치렁치렁한 드레스는 그 몸이 육체적 노동과는 거리가 먼 휴식과 돌봄의 몸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귀부인의 가냘픈 몸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차이 기호가 된다고 하였다. 이 같은 몸의 사회적 의미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날씬하고 보기 좋은 외모를 유지하지 못하면 자기를 가꿀 여유가 없는 사람이거나 자기를 등한히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곤 한다.
몸이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은 이제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 남성만이 여성의 몸을 시각적으로 음미할 수 있고, 여성들은 자신을 보여지는 대상으로 간주하여 외모를 가꾸도록 강요받았다면, 이제는 여성도 당당히 남성의 몸을 시각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남성도 외모를 가꾸어야 할 새로운 의무와 권리가 생겨난 것이다.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몸을 이용해서 소비자의 시선을 끌고, 관능적인 여체를 이용하여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이제는 남성의 몸도 광고의 표현 소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련의 현상들, 타인의 신체를 심미적 대상으로 음미하고, 아름다운 몸을 소유하기 위해 투자하고 노력하는 소비행위의 저변에는 자기 몸을 객체화하여 인식하는 몸에 대한 변화된 시선이 자리잡고 있다.
외모의 중요성,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더욱 강해
객체화된 신체의식이란 자신의 몸을 마치 다른 사람이 관찰하듯이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자신의 몸을 객체화시켜 인식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를「보여지는(to be look at)」대상으로서 생각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다양한 경로의 사회화 과정에서 여성적 신체에 관한 문화적 기준을 내재화하는데, 이런 암묵적 학습은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 기준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스스로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 아름다운 몸의 조건을 향해 노력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이 이상적인 신체이미지(ideal body image)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항상 감시하고, 그 기준에 의해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여 자신감을 갖거나 열등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 개인을 구성하는 특성은 키, 얼굴생김새, 체격과 같은 외모뿐 아니라 집안환경, 학력 등과 같은 사회적 단서, 그리고 성격이나 가치관, 대인관계능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특성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평가의 단서를 외모나 사회적 지위와 같이 타인의 눈에 드러나는 외적인 특성으로 삼는가, 아니면 자신만의 특성인 성격이나 가치관, 고유한 능력과 같은 내적인 특성으로 삼는가에 따라 개인이 자기존중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외모에 의존하는 정도는 달라지게 된다.
사회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집단주의 문화를 갖는 동양인들은 개인주의적인 서구인에 비해타인에게 비치는 사회적 자기(social self)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자기(subjective self)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동양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보다 남들로부터 얼마나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가에 민감하고 이 평가를 중시한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흔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에 의해 인상을 형성하고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곤 한다. 그리고 개인의 외모, 사회적 지위, 재산, 학벌 등은 밖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특성들이고, 사람들은 쉽게 이런 외적 특성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을 파악하고 평가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민감하고 타인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특성을 찾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일반적인 평가의 준거가 되는 외적인 특성들, 즉, 외모라든가 학벌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외모는 한 개인을 다른 사람과 구분지어주는 독특하고 분명한 특성이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신체의 시대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체를 가꾸고 신체를 관리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소비인가 점검을
모든 산업은 그들 자신을 위해 인간의 욕구를 창출한다. 그리고 광고는 인간이 가진 욕구와 욕망을 이용하기 좋아한다. 이와 같은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영역은 바로 아름다움을 파는 신체관련 산업이다. 젊고 아름다운 신체를 꿈꾸는 여성들을 향하여 개인적 불안과 자기 불만또는 콤플렉스를 갖도록 유도하며, 자신의 몸에 불만족과 문제를 느낀 소비자를 타겟으로 삼는다. 광고는 우리에게 머리카락에서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다갈색 피부를 부러워하는 사람에게는 원하는 피부 색깔을, 하얀 피부를 부러워하는 여성에게는 하얀 피부를 약속한다. 또한 신체를 드러내는 계절인 여름에는 휴식과 놀이의 상징인 구릿빛 피부를 목표로 삼게 하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그을린 피부를 곧바로 눈처럼 새하얀 피부로 만들라고 강요한다. 이렇게 하여 광고주는 인간 영혼의 무한한 존재론적 열망에 자신들의 상품을 해결책으로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욕구를 배양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내 몸을 감시하거나 음미하고, 수치심을 갖거나 유능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타인의 시선을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조작되고 만들어진 이상화된 신체이미지(idealized body-images)」들이 범람하는 매스 미디어를 지목할 수 있다. 인구당 화장품 소비량 세계 1위, 보톡스 주사 소비율 세계 1위, 성형수술률 세계 1위라는 명예를 안고있는 우리나라. 가히 몸 프로젝트를 위한 한국의 신체소비 시장은 한창 개발중인 금광처럼 반짝이지만, 그 안에서 정작 내 몸은「나」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만 할 것이다.
출처 :
박은아 교수 칼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광고정보" 연재 칼럼. 2005-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