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세상관찰] '새대가리'라는 억울한 누명

등록일 2026-09-01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17

[출처 : 그냥쌤의 심리학이야기 ]◁ 원문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

우리는 종종 기억력이 좋지 않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향해 '새대가리'라는 다소 모욕적인 비유를 건네곤 한다.

​

정교한 인지 능력을 지닌 인간과 달리 조류는 그저 순간의 본능과 조건반사로만 살아가는 ' 미물'일 것이라는 오래된 편견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

하지만 인지과학과 행동생태학의 눈으로 관찰한 새들의 세계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니키 클레이턴(Nicky Clayton) 교수가 진행한 스크럽제이(Scrub Jay) 연구는 조류에 대한 인류의 오만을 기분 좋게 깨뜨렸다.

​

이 새들은 묻어둔 먹이의 종류(무엇)와 장소(어디)뿐 아니라 그것을 묻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언제)라는 시간적 맥락까지 함께 기억했다.

​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살아 있는 벌레를 찾아 먹고 시간이 지나 벌레가 상했을 즈음에는 미련 없이 상하지 않는 땅콩을 선택했다.

​

오랫동안 인간만의 능력이라 여겨졌던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의 중요한 특성을 새들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까마귀나 까치 같은 새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한다. 수개월, 심지어 수년이 지난 뒤에도 그 사람을 알아보고 경계하거나 집단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정보를 동료와 아이들에게까지 전달한다는 사실이다.

​

이쯤 되면 '새대가리'는 모욕이라기보다 오히려 꽤 영리하다는 뜻에 가까운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

그래서 행동생태학 연구자들은 까마귀처럼 얼굴을 기억하는 새를 연구할 때 일부러 가면을 쓰기도 한단다.

​

포획이나 표식 같은 연구 과정에서 자신을 괴롭힌 연구자의 얼굴을 새들이 기억했다가 연구가 끝난 뒤에도 공격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연구는 끝나도 그 얼굴은 새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렇게 영리한 새들도 때로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자신에게 해를 가했던 사람과 비슷한 색깔의 모자를 썼거나 비슷한 옷차림을 한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오인해 공격하기도 한다.

​

누군가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대까지 함께 경계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과거의 기억과 정서가 현재의 판단을 흔들며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새대가리'라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억울한 별명이었다. 물론 그 이름에 걸맞는 새들도 많다.

​

그 바닥에도 상위 0.1%라는 똑똑한 녀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영리한 어떤 새들도 때로는 놀랄 만큼 엉뚱한 실수를 한다.

​

인지능력은, 기억은, 일화기억은 인간만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들도 인간과 유사하게 실수를 한다니 흥미롭다.

​

'새대가리'라는 말을 통해 새삼 여러 측면에서 겸손을 배운다. ㅎㅎ

 

참고문헌

​

  • Clayton, N. S., & Dickinson, A. (1998). Episodic-like memory during cache recovery by scrub jays. Nature, 395(6699), 272–274.

  • Cornell, H. N., Marzluff, J. M., & Pecoraro, S. (2012). Social learning spreads knowledge about dangerous humans among American crow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79(1728), 499–508.

  • Marzluff, J. M., Walls, J., Cornell, H. N., Withey, J. C., & Craig, D. P. (2010). Lasting recognition of threatening people by wild American crows. Animal Behaviour, 79(3), 699–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