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관찰] '새대가리'라는 억울한 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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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기억력이 좋지 않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향해 '새대가리'라는 다소 모욕적인 비유를 건네곤 한다.
정교한 인지 능력을 지닌 인간과 달리 조류는 그저 순간의 본능과 조건반사로만 살아가는 ' 미물'일 것이라는 오래된 편견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인지과학과 행동생태학의 눈으로 관찰한 새들의 세계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니키 클레이턴(Nicky Clayton) 교수가 진행한 스크럽제이(Scrub Jay) 연구는 조류에 대한 인류의 오만을 기분 좋게 깨뜨렸다.
이 새들은 묻어둔 먹이의 종류(무엇)와 장소(어디)뿐 아니라 그것을 묻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언제)라는 시간적 맥락까지 함께 기억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살아 있는 벌레를 찾아 먹고 시간이 지나 벌레가 상했을 즈음에는 미련 없이 상하지 않는 땅콩을 선택했다.
오랫동안 인간만의 능력이라 여겨졌던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의 중요한 특성을 새들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까마귀나 까치 같은 새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한다. 수개월, 심지어 수년이 지난 뒤에도 그 사람을 알아보고 경계하거나 집단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정보를 동료와 아이들에게까지 전달한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새대가리'는 모욕이라기보다 오히려 꽤 영리하다는 뜻에 가까운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행동생태학 연구자들은 까마귀처럼 얼굴을 기억하는 새를 연구할 때 일부러 가면을 쓰기도 한단다.
포획이나 표식 같은 연구 과정에서 자신을 괴롭힌 연구자의 얼굴을 새들이 기억했다가 연구가 끝난 뒤에도 공격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연구는 끝나도 그 얼굴은 새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영리한 새들도 때로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자신에게 해를 가했던 사람과 비슷한 색깔의 모자를 썼거나 비슷한 옷차림을 한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오인해 공격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대까지 함께 경계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과거의 기억과 정서가 현재의 판단을 흔들며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대가리'라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억울한 별명이었다. 물론 그 이름에 걸맞는 새들도 많다.
그 바닥에도 상위 0.1%라는 똑똑한 녀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영리한 어떤 새들도 때로는 놀랄 만큼 엉뚱한 실수를 한다.
인지능력은, 기억은, 일화기억은 인간만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들도 인간과 유사하게 실수를 한다니 흥미롭다.
'새대가리'라는 말을 통해 새삼 여러 측면에서 겸손을 배운다. ㅎㅎ

참고문헌
Clayton, N. S., & Dickinson, A. (1998). Episodic-like memory during cache recovery by scrub jays. Nature, 395(6699), 272–274.
Cornell, H. N., Marzluff, J. M., & Pecoraro, S. (2012). Social learning spreads knowledge about dangerous humans among American crow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79(1728), 499–508.
Marzluff, J. M., Walls, J., Cornell, H. N., Withey, J. C., & Craig, D. P. (2010). Lasting recognition of threatening people by wild American crows. Animal Behaviour, 79(3), 699–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