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심리치료] 여긴 어디? 나는 누구?-뇌가 보내는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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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세포들을 이미지로 표현해 봄, 아우성!
요즘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 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당황/황당의 심정에 공감이 되었고 참 재치 있는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짧은 문구 안에 엄청난 심리학적, 뇌과학적 통찰이 담겨 있지 않은가. 우리가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며 멍해지는 순간, 우리 뇌는 가장 본질적인 두 가지 좌표-장소(Where)와 자아(Who)-를 동시에 잃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https://blog.naver.com/justie25/224245185624
어흠(이 헛기침의 의미는 요 위↑ 링크한 글을 보면 이해되실 듯)... 뇌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해마 속에 사는 '장소세포(Place Cells)'가 파업을 선언한 상황이다. 이 녀석들은 노벨상*을 받은 귀한 몸들답게 내가 발 딛고 선 장소를 파악한 뒤에야 그 위에 '나의 행동'과 '기억'이라는 데이터를 쌓아 올린다. 즉, '여긴 어디?'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는 누구?'라는 정답지도 출력되지 않는 법이다.
* 장소세포를 발견한 공로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 존 오키프 교수 가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Mouse(나는 이 동물에 혐오가 있어서 이렇게 쓴다. 하지만 미키 마우스는 또 좋아하니... 희한하다)의 해마(hippocampus)에 특정 장소에만 반응하는 세포가 있음을 일찌감치(1970년 대) 보고 했으나 노벨상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주어졌다.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자세한 노벨상(공동 수상) 소식은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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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세포의 현장 복귀 프로젝트
이 대단한 이론이 논문 속에만 박제되어 있는 게 아까워, 이번엔 내가 이 이론을 운동화 질끈 묶고 캠퍼스 안에 있는 비호동산으로 직접 끌고 가 보았다. 이름하여 '장소세포의 현장 복귀 프로젝트'다. 좁은 상담실이나 강의실에서 '나는 원래 이래'라며 고장 난 내비게이션처럼 같은 자리만 맴도는 학생들의 장소세포를 강제로 깨워보는 것이다.

대구대학교 진짜 넓다. 학교 앞 호수는 '문천지'다. 저렇게 거인이 되어 캠퍼스를 성큼성큼 걸어 다닌다면ㅋㅋㅋ hippocampus(해마-기억 관련 부위)는 p가 하나 빠졌응, AI가 깜박한 듯.
▶ '나는 원래...'라는 가짜 지도 찢어버리기
최근 <건강심리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캠퍼스 내 비호동산으로 야외 집단상담 프로그램인 '워킹앤토킹' 실습을 나갔다. 실습 소감문들을 보니 출발 전 많은 학생들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낯가림이 심한데... 걷는 거 별로 안 좋아 하는데... 대화하는 거 자신 없는데...'
그런데 웬걸. 흙을 밟고,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하며 걷기 시작하자 '원래' 그렇다던 그 학생들의 입이 터지고 자연스럽게 걷고 오감을 열었고 다음 실습이 기대되기 까지 한다며 '왜 진작 이런 좋은 걸 몰랐을까?'라며 비호둥산에 진작 가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학생들까지 있었다
이게 바로 장소세포의 마법이다. 좁은 공간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굳어버린 '정체성의 조기 마감(Foreclosure)' 지도가 새로운 공간적 맥락을 만나자 실시간으로 재구성(Remapping)된 것이다. 뇌가 '어? 여기선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도 안전하겠는데?'라고 판단하며 스스로 정해둔 한계를 '이탈'해버린 셈이다.

대구대학교 비호동산에 있는 유아숲 체험원, 역시 아이들은 자연에서 놀아야 한다. 이곳을 떠올리기만 해도 재잘되는 어린 아이들이 떠오론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
'다음 실습이 기대된다.'는 학생들의 소감문을 보며 일단 성공임을 감지했다. 그리고 함께 야외 실습한 학생들이 서로 유대감을 느꼈다는 후기도 꽤 많이 보고되었다. 굳이 '우리는 하나야'라고 외치지 않아도 '같은 지도를 공유하는 사이'라는 신경학적 연대감(?)이 형성된 것일까?
우리는 더 자주 밖(마음 밖, 강의실 밖,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한다. 새로운 곳에서 더 확장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니며 같은 공기를 마실 때, 우리 뇌 속 장소세포들은 묘한 동질감을 느낄지도. 그리하여 우리는 외롭지 않을 것이리라...

비호동산 유아숲체험원 안내문과 귀여운 도토리 보관함
이럴 땐 이렇게 해보라!
갑자기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들며 머릿속이 하얘진다면, 그건 당신의 장소세포가 지루해서 잠든 탓일지도 모른다. '주인님, 여기 지도는 이제 다 외웠으니 제발 딴 데 좀 갑시다!' 뇌가 아우성친다면, 그땐 그냥 운동화 끈을 다시 묶자. 거창한 외출이나 등산이 아니어도 된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한 번도 안 가본 곳, 아님 같은 곳이라도 안 다니던 코스로 가는 정도라면 충분하다. 당신의 장소세포가 새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이 몰랐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이 그 지도 위에 선명하게 나타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