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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관찰] 케.데.헌 감상문

등록일 2025-09-11 작성자 김근향 조회수 10

[출처 : 그냥쌤의 심리학이야기 ]◁ 원문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

 

 

 

 

케데헌, 이 시대의 원더우먼?

그리고 나의 마음 한쪽을 건드린 영화

 

케.데.헌의 존재, 말해 뭐해? 재밌다. 신난다. 멋지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좀 아리기도 하다. 명성은 이미 들었지만 영화 자체를 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평소 영화평은 잘 보지 않는다. 그냥 보고 느끼고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자유롭게 써 본다.


기억이 남는 10가지 장면

영화 <케데헌>은 단순한 K-POP 판타지를 넘어선다. 세 명의 삼총사가 주는 든든함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폭식, 숨겨진 가족의 비밀,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 그리고 환청인지 생각인지 모호한 내면의 소리까지... 곳곳에 웃음과 아픔이 교차한다.

귀여운 까치 호랑이와 꽃화분, 세대 교차의 원더우먼 이미지, 엄마와 딸의 강한 연결, 멜로망스의 노래, 힙하게 재해석된 저승사자까지. 이 열 가지 장면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1. 역시 삼총사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 3. 안정감이 있고 때로 완벽하기도 하다. 세 명의 여자 아이돌이라니… 나로선 자동으로 S.E.S가 떠올랐다. 헌터릭스 멤버 루미가 SES의 멤버 바다와 닮았다는 얘기도 있던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세 여성 삼총사가 지키는 대상이 아이돌 팬들이라는 설정은 신선했다. 사실 K-POP은 수많은 어린 팬들의 삶을 지탱해주지 않았던가.

2.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폭식

헌터릭스 멤버들이 연습이나 공연 전후에 보여주는 폭식 장면이 정겹다. 김밥, 새우과자... 우리 일상 간식들이 등장하니 반갑고 과장된 양에도 웃음이 났다. 힘든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먹고 싶던 걸 마음껏 먹는 기분, 그건 백퍼 공감. 하지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는 역시 거짓이다.

3. 숨기면 병난다

루미는 아빠가 악령이라는 사실과 문양을 숨긴다. 하지만 숨기는 건 결국 병이 된다. 루미를 키운 엄마 친구 셀린은 자부심과 동시에 과도한 부담을 주며 비밀을 억누르게 한다. 그 압박이 루미를 옥죄었다. 주제곡 <Golden>의 가사 “숨는 건 끝났다”(I’m done hidin’)를 들을 때 가슴이 뻥 뚫렸다.

4. 가족의 굴레… 진우 아빠는?

루미는 혼혈이라는 비밀로 괴로워하고 진우는 어머니와 동생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루미 쪽은 비교적 설명이 있었지만 진우의 가족사는 미스터리. 특히 '진우 아빠는 어디 갔을까?'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다만 진우가 장남으로서 든든한 아버지 없이 지내며 과도한 부담과 죄책감을 안게 된 건 분명해 보였다.

5. 환청일까, 생각일까

진우는 환청에 시달린다. 어머니와 동생의 원망, 악령의 속삭임, 자기 자신을 꾸짖는 소리... 그런데 루미와 아픔을 나눈 뒤엔 환청이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이게 환청이라기보다 내면의 소리라고 본다. 정신병리학 시간에 나왔던 ‘audible thinking’이 떠올렸다. 결국 생각이 지나쳐서 마치 외부의 소리처럼 들리는 것 아닐까. 진우에게 연민을 느낀다.

6. 까치 호랑이와 꽃화분

우리나라 전통 민화에서 보던 까치 호랑이가 귀엽게 등장했다. 악역일 줄 알았는데 쓰러진 꽃화분을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쓰러뜨리고 또 일으키는 그 반복이 묘하게 웃음을 줬다. 호랑이가 맹수임에도 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모습, 거기에 반했다. 영화가 끝나도 불쑥불쑥 떠올라 혼자 웃게 되는 장면. 감독의 디테일이 재미있다.

7. 이 시대의 원더우먼

SES에 이어 원더우먼까지 떠올라 내 나이 티가 너무 난다. 사무직 여성이 뱅그르르 돌면 금빛 왕관을 쓴 원더우먼으로 변신해 문제를 해결하고 지구(?)를 구하던 그 캐릭터. 헌터릭스 삼총사가 바로 MZ 세대의 원더우먼 아닐까.

8. 딸의 엄마 동일시

모계의 힘은 강하다. 루미는 엄마와 오래 함께하지 못했지만 결국 긍정적으로 동일시한 듯하다. 엄마로부터 이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존경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루미 부모의 사랑은 어떤 이야기였을까? 루미 아빠는 어떤 악령이었을까?

9. 헉, 멜로망스

K-POP 영화라 당연히 노래는 나오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멜로망스라니. 묵직한 영어 가사들 사이에서 멜로망스의 편안하고 경쾌한 노래가 루미와 진우의 감정을 대변해 주었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10. 힙한 저승사자

<전설의 고향>에 단골로 등장하곤 했던 검은 갓과 도포, 하얀 얼굴과 핏빛 입술의 저승사자를 기억한다. 늘 무서웠다. 그런데 이번엔 힙하다 못해 멋졌다. K-POP과 한류 덕분에 전통문화도 새롭게 보인다. 이제는 저승사자도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세련되게 느껴진다.


마무리

케데헌은 단순한 K-POP 판타지를 넘어 나에게는 ‘이 시대의 원더우먼’을 만나는 경험이었다. 즐겁고 흥분되다가도 어쩐지 마음이 아린 건 아마도 그 속에 담긴 상처와 회복의 이야기가 내 마음과도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